고교생이 보는 세상 - 전철 안에서
보스톤코리아  2008-05-19, 16:45:57 
고등학생, 사춘기이거나 조금은 지난 그런 시기다. 그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생각할까.  브루클라인 하이스쿨에 재학중인 학생, 김자은양의 생활 주위에 일어나는 일을, 또 그들의 생각을 공유하고자 ‘고교생의 세상읽기’를 연재한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

김자은(브루클라인 하이스쿨)

만원의 지하철에 올라탈 때마다 나는 잊지 않고 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올라타자마자 전철 값을 지불한 뒤 아이팟의 볼륨을 켜고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곳에 서서 자리를 잡는다. 그 때부터가 진정한 전철의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땀 범벅인 만원의 전철에서 평화를 찾은 나는 그제서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회사원 아저씨, 대학생, 연인, 아줌마, 노부부 그리고 나와 같은 학생들이 지하철의 계단에 올라타는 것을 나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관찰한다.

모두가 다른 꿈을 갖고 같은 전철의 계단에 올라탄다. 모두가 다른 목표를 갖고, 모두가 다른 이유를 갖고, 모두가 다른 아픔을 갖고 그리고 모두가 다른 고민을 갖고 같은 전철의 계단에 올라탄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 좁은 전철 안에서 밀착해 서로의 체온과 장소를 공유한다. 이 말을 듣고 "그래서?" 라는 반응을 보일 사람들이 많겠지만 난 이게 상당한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잦다. 생판 모르는 사이의 사람들이 서로의 목적지도 모른 채 좁은 전철의 한 공간에서 공기를 나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놀랍다고 말이다.

이렇게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는 매일매일의 평범한 일상이지만 사람들은 끝내야 할 일이 산더미라고 변명을 하며 관심 조차 가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오히려 주변인의 겉모습과 치장을 보고 간단히 몇 초 안엔 판단을 끝내고는 한다. 어느 나라던지 관계 없이 길을 걷다 보면 짝지어 걷는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어보면 꼭 똑 같은 주제의 이야기가 있곤 하다. 지나가는 남자의 신발이 얼마일까 하는 둥, 그 사람은 집안에 돈이 많아서 그 신발을 쉽게 손에 얻을 수 있었을까 하는 것부터 머리부터 발 끝까지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귀가 얇은 편이라 한 사람의 말에 심하게 귀를 기울이는 때가 있기도 하다. 그런 나 자신을 관찰한 결과, 조금 더 혼자서 판단하는 걸 배워야 한다는 결론을 지었다. 특히나 전철에 탈 때에는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사람들을 관찰하려고 노력한다.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대생의 언니는 어쩌면 보이는 만큼 그렇게 불량하지 않을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 까만 뿔테의 의 안경을 끼고 있는 작은 키의 초등학생은 어쩌면 보이는 것처럼 책벌레가 아닐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 인상을 찌푸리고 한숨을 푹푹 쉬어대며 앉아있는 회사원은 어쩌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성격이 나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 그런 사소하면서도 즐거운 생각을 하며 나는 가끔 나도 모르게 웃고는 한다. 그러다가 한 인상 좋아보이는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면 나는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고는 한다.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전철에서의 십 분의 여행은 언제나 이렇게 나에게 의미를 보탠다.
나는 옷을 평범하게 입는 편이 아니다. 언발란스한 색을 껴 맞춰 입는다 싶으면 어느 날은 모노톤으로 너무나 평범한 차림을 하기도 한다. 쿨한 척해도 주위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조금이라도 시선이 쏠리거나 하면 내 얼굴에 무언가 묻어있거나 혹은 그 날의 옷차림이 이상한가 고민해보거나 하는 소심한 사람이다. 그러다가도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나와 같은 생각과 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에 괜히 살풋 웃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겉으로만, 그것도 한 정거장 지나갈 만큼의 짧은 시간 안에 판단하려고만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건 어떨까. 그들은 날 어떻게 생각할지. 빨간 셔츠 안의 나를, 보라색 구겨지고 헤어진 스니커즈 안의, 최대볼륨 아이팟의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생각은 해봤을까? 만원의 지하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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