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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마운틴의 주역들(4)
보스톤코리아  2009-10-12, 15:36:26   
Ethan 은 부친 Abel을 도와 산중의 삼림을 농지로 개간하는 힘든 일을 하며 성장하여, 힘이 장사이고, 매우 용감하였다. 키도 6피트 2인치로 당시로서는 거인으로 500파운드 무게의 자루를 들어 옮겨 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1816년, 24살의 Ethan은 독립하여 NY 주에서 살던 중, 암에 걸려 농사일과 여관 일을 하기 어렵게 된 외할아버지Eleazar Rosebrook이 도와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거절 못하여,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함께 기거하게 된다. 돕는 대가로 Ethan은 외할아버지의 농지와 여관을, 모게지와 빚과 함께 떠맡게 된다. Eleazar의 병세가 점점 나빠지자, 돌 볼 손이 더 필요하여, Ethan 이모의 딸인 Lucy Howe도 합치게 된다.

이제Crawford Notch와 Mt. 워싱톤을 찾는 여행자들에 대한 안내와 숙박업을 Crawford 부자간에 각 각 모두 도맡아 하게 되었다. 다음 해 Eleazar가 세상을 뜬 후, Ethan과 Lucy는 결혼을 하고,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게 된다. 이 신혼부부의 첫 아이가 태어나던 날, 촛불로 인하여 집이 전소되고, $3,000 의 모게지 빚만 남게 되는 경제적 불운을 겪는다.

그러나 Ethan은 Mt. 워싱톤의 절경이 점차 알려져 여행자가 많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소실된 집의 두 배나 되는 집을 지었다. 한편 Ethan의 등산안내를 받는 등산객들이 울창한 나무와 우거진 숲으로 인해 산을 오르는 데 매우 고생하는 것을 보고는Abel과 Ethan 부자는 등산객들이 산을 쉽게 오르고 천연의 경치를 잘 볼 수 있도록 등산로를 내기로 하였다.

1819년 대통령지대의 서쪽 방향에서부터 Mt. 워싱톤 정상까지의 등산로를 큰 고생 끝에 완성하였다. 이 등산로가 널리 알려진 Crawford Path로서, 미국 최초의 등산로였다. Ethan이 Crawford Path를 신문광고에 내자, Mt. 워싱톤을 찾아 즐기는 등산객이 늘게 되었다.

Crawford Path가 생기게 됨으로써 천연림의 험준한 화이트마운틴을 오른다는 것이 하나의 레크리에이션으로 인식되기 시작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새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이제 아메리칸들은 개인적, 과학적 탐구, 혹은 단지 경치를 즐긴다는 등 등 이유로 산에 오른다는 것이 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820 년 Ethan 의 안내로 Mt. 워싱톤 정상에 오른 Carrigan 일행 7명은 대통령지대의 봉우리들을Adams, Jefferson, Madison, Monroe, Franklin, Pleasant로 명명하였다. (Mt. 워싱톤을 언제 누가 명명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1784년에 Dr. Cutler의 문서에 처음 표기 되었다.

White Mountains이라는 이름도 뉴잉글랜드를 두 번 여행한 Josselin 의 책에 처음 나온다. ) 이들 일행 중 일부는 재차 등반하여 Mt. 워싱톤의 높이를 6,428피트라는 측정도 하였다 (실제로 6288 피트). Crawford Path는 여러 산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며 정상에 도달하는 불편함이 있어, 1822년 Ethan은 실용적이며, 편한 새 트레일을 개척하였다.

이 trail이 현재 Cog Base Station 에서 시작하는 기차 길과 비슷하다. 또한 Mt. Pierce 까지의 등산로를 넓혀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하여 좀 더 편한 등산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1829년 Ethan이 Crawford Notch의 북쪽 입구에 지은 Notch House는 당대의 저명인사들이 머물게 되면서 인기가 높았다. 역대 미국상원 중 최고의 웅변가로 알려진 마사추셋츠의 Daniel Webster상원의원은 1831년 여름 Ethan의 안내로 산 정상에 올라 다음과 같은 짧은 연설을 하였다.

Mt. 워싱톤, 내가 먼 길을 와서, 큰 고생을 하며 정상에 올랐는데, 너는 나를 차갑게 맞으니 매우 섭섭하다. 내 앞에 펼쳐진 웅대한 경치를 볼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구나. 오로지 네가 자리 잡은 이 불편한 환경만이 내가 이 경치를 즐지기 못하게 막는구나. 하산을 시작하자 눈보라가 쳤다고 하니 49세의 Webster도 추위에 매우 떨었음에 틀림없다 하겠다.

당시의 유명한 소설가 Nathaniel Hawthorne, 예일대학 학장 Dwight 박사, 시인 Thoreau, 수필가 Emerson, 역사학자 Parkman등도 Ethan의 안내로 Mt. 워싱톤을 올랐다. 등산객이 많이 늘게 되자, 등산 안내는 고용한 안내인에게 맡겼다. Ethan또한 산을 수없이 올라 더 이상 안내를 피하였다. 그러나 NY의 식물원 학자, 혹은 유럽의 식물학자 들이 실험실용으로 혹은 표본채집을 위하여 등산안내를 요청하였을 때는 Ethan이 직접 도왔다.

식물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자, Ethan은 스스로 산에 올라 식물을 뿌리와, 흙까지 함께 채집하여 식물학자에게 보내는 등 과학적 연구에도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하였다. 등산과 함께 화이트마운틴의 야생동물과 물고기를 잡기 위한 사냥꾼과 낚시꾼들이 생기자 이들도 안내하였다.

Mt. 워싱톤에 대한 인기는 점차 높아지고 있으나, 아직 미개척지의 한 변두리에서 여관업과 등산안내 수입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바란다는 것은 애당초 이루어 질 수 없었던 것이었다. 1832년 Ethan의 나이가 40줄에 들어서면서, 끝없는 노동, 긴 긴 겨울,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여생에 영향을 줄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게 된다. (계속)

역사문제연구소 윤희경 박사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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