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정치의 차이
보스톤코리아  2012-07-16, 14:12:45 
노라 애프런의 삶은 영화였다. 지난 달 26일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한 그를 두고 뉴욕 타임즈는 영화 같은 사랑을 창작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랑을 직접 경험하는 삶을 살았다고 평했다.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핫번> 등의 영화 작가이자 일부는 감독 역할까지 했던 그였다.

삶의 경험을 솔직하게 영화에 옮기는 소통 방법은 두 사람 모두 시나리오 작가였던 부모로부터 배운 유산이었다. 세상은 모두 닮아가는 모방 과정이란 것을 어려서부터 배웠단다.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는 감독 롭 라이너의 이혼 경험을 인터뷰한 노라 애프런이 탄생시켰다. 해리는 라이너 감독, 셀리는 노라 애프런과 친구들의 경험으로 만들어졌다. 라이너 감독의 친구이자 해리 역을 맡은 빌리 크리스털의 양념도 감칠맛 나게 뿌렸다.

에프런의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이 영화와 만나면서 영화 최고의 명 장면을 연출한다. 오르가즘이라는 터부시 되는 상황을 침실이 아닌 식당으로 옮긴 생각의 전환은 그래서 가능했다. 어처구니 없는 솔직함이지만 거기에 유머가 더해지며 우리는 공감이란 방점을 찍는다. 식당에서 맥 라이언의 오르가즘 연기를 본 중년 아줌마는 “저 여자가 먹는 것으로 주세요(I will have what she’s having)”고 말해 배를 잡게 한다. 대사는 빌리 크리스털의 아이디어다. 영화 촬영지였던 맨하튼 <가츠스 델리카트슨>은 “그녀가 먹었던 것을 먹기를 바랍니다”라는 문구를 지금도 달아놓고 있다.

백악관 인턴시절 이룬 최고의 업적은 백악관 대변인이 실수로 화장실 문을 잠궈 갇혔을 때 이를 구출했던 것이라는 게 노라 에프런이다. 그런 유머가 그의 삶 주변 도처에 굴러 다닌다. 에프런의 삶에도 뼈아픈 부분이 있었다. 세 번의 결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1996년 자신의 모교인 웰슬리 대학 졸업연사로 나와 그는 그 일부분을 표출했다. “여성도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 원하면 언제든지 바꿔라. 그러나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대신 삶이 뒤죽박죽 되고 복잡해지는 정도는 껴안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복잡함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영화는 끓임 없이 현실에 메시지를 던진다. 현실 또한 끊임없이 영화에 메시지를 던지는 상생관계다. 현실의 삶과 영화는 서로간에 메시지를 주고받는 소통과정을 거치며 서로를 닮아간다. 노라 애프런은 영화도 자신을 닮게 했고 자신도 영화를 닮아갔다. 삶이 어떻게 변하든 영화가 어떻게 변하든 솔직함과 유머로서 소통하면서 삶을 풍부하게 했다.

대선 경쟁이 한창인 한국에서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는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한국시간으로 10일 출마를 선언했다. 한국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 박 전위원장의 대선 슬로건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박 전위원장은 15분간 출마 연설에서 국민을 무려 80여 차례나 반복할 정도로 국민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타임스퀘어를 출마선언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바로 ‘소통’이다. 출정식 시작 전 '희망 엽서'에 박 전 위원장에게 바라는 바를 적도록 했다. 당초 이 중 선택된 몇 희망엽서에 답을 할 예정이었지만 엽서 일부는 단상에 마련된 '행복 나무'에만 걸렸다. 소통을 극히 강조하고 있지만 변비에 걸린 소통처럼 어색하다. 소통을 하고 싶어하지만 마치 소통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소통 상실증 환자처럼 말이다.

기자들이 박 전위원장에게 ‘불통’이라 불리는 이유를 묻자 “불통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했다. 그러나 박 전위원장 주변 인물도 불통을 인정한다. 한 때 박근혜 측근이었다 직언으로 멀어진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은 CBS 김현정 쇼에 출연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쇼에 출연한 박근혜 선거 캠프 이상돈 교수는 “기자들이 박근혜 위원장과 직접 인터뷰하면 한이 없겠다”라는 말을 듣는다며 이를 건의해도 듣지를 않는다고 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은 “팔이 아프도록 전화를 들고 통화를 한다”며 어떻게 불통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어찌 보면 박근혜 식 유머일 수도 있겠지만 방향을 잃어버린 소통에 국민은 얼음장이다. 그 통화가 80번이나 언급한 국민들과의 통화였을까. 물론 외국인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국민과 통화했는지가 중요하다.

국민의 삶은 끊임없이 정치에 메시지를 던지는데도 박근혜 전위원장은 국민에게 다른 신호를 던진다. 절은 국민을 향하고 있지만 시선은 다른 곳에 둔 것 같다. 박근혜 전 위원장은 메시지를 주고받는 솔직함보다는 침묵을 선택한다. 이것을 소신이라고 주장한다. 상당수 국민이 5.16을 쿠데타라고 하는데 박 전 위원장은 구국의 혁명이라고 메시지를 던진다. 소신일 수 있지만 결코 상생을 추구하는 소통은 아니다.

5.16과 정수장학회, 유신정치 등 과거사에 대해서 아버지가 아닌 전 대통령으로서 솔직하게 인정한다고 해서 박근혜 전 위원장의 소신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과거의 아픔은 누구나 간직하는 공통적인 화두다. 다 알고 있는 사실, 감추기 보다는 솔직하게 털어놓았을 때 공감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에프론의 소통과 박근혜의 소통은 많이 다르다. 단지 영화와 정치의 차이뿐일까. 솔직함은 영화든, 정치든 상대방을 설득하는 최고 무기다. 현재의 소통으로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 해도 내(국민) 꿈이 아닌 내(박근혜) 꿈이 이뤄지는 나라이기 십상이다.


장명술 l 보스톤코리아 편집장 editor@bost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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