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구온난화, 산아제한, 줄기세포연구, 진화론 등의 문제가 정치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과학자가 정치계로 더 많이 진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즉, 과학적 지식과 연구 경험이 있는 정치인이 현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파생된 정치적·윤리적 문제에 대해 보다 정확하고 현실적인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과학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고 의회에는 과학자 출신의 정치인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

현재 미국에서 과학자 출신의 정치인은 소수에 불과하다. 의회에 목사 출신 의원이 6명인데 반해, 화학자는 3명, 물리학자 2명, 검안사 1명, 수의사 2명이 있을 뿐이다. 의회 전체 535명을 통틀어 과학적 배경을 가진 의원은 총 24명에 불과하다. 정치계에 과학자 출신이 적다 보니 정책 결정에서 과학적 지식의 중요성도 잘 인식되지 못하고 비과학적인 의사 결정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미 정치계에서 과학이 외면받기 시작한 것은 1995년 공화당 주도의 의회가 기술평가부(Office of Technology Assessment)의 예산을 삭감하면서부터이다. 기술평가부는 초당파적 기구로서, 의회의 요청에 따라 정책 결정에 필요한 과학 기술 관련 보고서를 작성, 제출하는 역할을 해 왔다. 기술평가부의 축소는 곧 비과학적인 정책을 양산해 냈고, 의회는 비전문가들의 목소리고 가득 차게 되었다. 심지어, 캔사스 대학의 물리학자 아드리안 멜롯(Adrian Melott)은 "현 정부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과학을 왜곡하는 데 있어 최악의 행정부다"라고 평가할 정도이다.

과학계와 정치계의 사이가 멀어진 데는 과학자들의 탓도 있다. 논리를 중시하는 과학자들에게 비논리적인 정치계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었던 것. 미시간 주의 공화당 의원이자 물리학자인 버논 어러스(Vernon Ehlers)는 "(내가 정치에 입문했을 때) 의원들이 너무나도 많은 비논리적인 결정을 하는 것을 기억한다"라며, 과학자로서 정치계에 진출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평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여러 정치적·윤리적 문제가 대두하면서, 과학자의 정치계 진출은 현대 정치의 권장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 되고 있다. 게다가 많은 과학자가이전의 중립적 입장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현실 문제에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다. 물리학자이자 민주당 의원인 빌 포스터(Bill Foster)는 "현대 과학자들의 독특한 점은 그들이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 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과학자가 정치운동을 할 경우 상당히 많은 기부금을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백만장자이기도 한 포스터 의원은 현재 19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680명의 기부자 중 71%가 과학자 출신이다. 1988년 노벨상 수상자 리온 레더만 (Leon Lederman)은 "우리는 의회로 진출하기 원하는 능력 있는 과학자는 누구나 지지할 의사가 있다"라고 밝혔다.
과학자들의 정치계 진출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이들은 그들의 목적이 민주당이나 공화당 양당 중 하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들은 미국과 국제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정치와 과학의 협조 속에서 풀어나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현재 미국인의 정서를 고려해 볼 때 과학자를 위해 자신의 표를 기꺼이 던져줄 유권자 수를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로 예상된다.

김진혁  kjh@boston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