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 라파엣 산
보스톤코리아  2010-11-22, 13:57:54 
떠들썩하고 흥겨웠던 단풍 산행이후 한 달 동안 산을 향한 그리움으로 마음의 허기를 느끼고 있을 무렵, 산행공지에 나타난 하얀 눈으로 뒤덮인 라파엣 산이 햇빛을 받아 눈부신 모습을 뽐내며 나를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그동안 산행 며칠 전부터 거세게 불던 바람과 세찬 빗줄기도 산행의 아침이 밝아오면 거짓말처럼 그치고 하늘이 맑아지곤 하였는데, 이번엔 얼음이 얼고 눈까지 내린다고 하니 춥고 미끄러질 산행에 걱정이 앞섰다.

하얗게 서리가 내린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만남의 장소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분들이 나와 계셨다.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반갑게 닉네임을 부르며 포옹하기도 하는 산우들의 얼굴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러 대의 차로 나눠 타는 부산스런 발걸음이 그치고, 산 아래를 향해 가는 차안에선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소소하게 펼쳐지고, 명랑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으며, 즐거운 기대와 설레임으로 훈훈한 열기가 가득찼다.

산에 가까이 갈수록 펼쳐지는 산의 모습이 울긋불긋 화려했던 잎새는 간데 가 없고 가지만 앙상하고 황량하게 서 있는 모양이 마치 젊고 예쁜 여배우의 나이 들어 변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휑하게 뚫려있는 쓸쓸함으로 다가왔다. 차창너머 보이는 산봉우리를 온통 뒤덮고 있는 회색 구름들로 인하여 정상에서 펼쳐지는 경관을 놓치게 될 것이 원망스럽기만 한데, 운전을 하시던 구로동님이 구름에 가려진 무심한 라파엣 산을 가리키며 “통통이님! 이번 산행후기를 쓸때, 이 구로동이 산을 올라갈 생각에 설레인다고 써주세요” 라고 주문하시곤 수줍게 웃으신다. 산우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산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고스란히 배어나는 모습이 따뜻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산등성이 가팔라지면서 군데군데 바위에 얼음이 덮여있어 무척 미끄러웠다. 겨울산행에서 꼭 필요한 아이젠을 끼워야할 때이다. 상어의 이빨처럼 뾰족한 톱니들이 박혀있는 아이젠은 미끌거리는 얼음위에선 , 어릴 적 보았던 만화 주인공인 무적의 마징가 제트처럼 얼음을 부수고, 하얀 눈을 만나면 얌전한 새색시처럼 살포시 내려앉아 “뽀드득, 뽀드득 ” 경쾌한 소리를 내며 길을 열어준다. 이젠 어떤 얼음이 덮인 바위나 눈길이라도 미끄러질 것을 걱정하며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산위로 올라가며 만난 바다의 모습이 다소 생경스럽고 엉뚱하게 생각되지만, 자연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모양과 성질이 다르더라도 , 인간의 눈으로 본 틀을 벗어나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며 서로 닮아 가는가 보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자연처럼 서로 어우러지는 여유로움과 유연함을 닮는다면 삶이 훨씬 즐겁고 아름다울 것 같다.
땀을 흘리며 힘겹게 올라와야만 볼 수 있는 산 꼭대기만의 경치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산 중턱은 구름이 걷히면서 햇빛이 내리 비치는 파아란 하늘이 펼쳐지고, 발아래엔 솜같은 구름이 널려있고 산꼭대기는 하얀 눈으로 덮여 있으니! 금방이라도 긴수염의 신선들이 구름을 타고 튀어나와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멋진 시조로 읊어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아무리 좋은 경치라도 혼자서 즐기는것 보다 산우들과 함께 나누니 감동과 즐거움이 더 커지는 듯 하였다. 그래서 기쁨은 함께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절반이 된다고 했나보다. 가파른 산등성과 미끄러운 바위를 오를 때면 서로 손을 내밀어 끌어주며 힘든 산행을 함께 견뎌내고, 따사로운 햇살아래 옹기종기 모여앉아 맛있는 음식도 함께 나누어 먹으니, 산우들이 친구나 가족이 된 듯 정다웁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서리와 얼음과 하얀 눈이 덮인 첫 겨울 산행을 기대와 걱정으로 시작하였지만 구름을 타고 눈꽃나라에 다녀온 듯 한 환상적인 경치를 접하고 난 이후에, 이젠 누구에게나 겨울 산행의 아름다움을 전하면서 강력히 추천하는 열혈 팬이 되었다. 머지않아 송이송이 눈꽃송이가 펄펄 내려오는 날이 오면 , 살을 에는 추위도, 따뜻한 솜이불의 아늑한 유혹도, 산을 향해 달려가는 가슴 뛰는 설레임과 열망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보스톤 산악회원 현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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