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족사 찾기(8)
보스톤코리아  2010-12-20, 15:07:59 
나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의 가족사를 찾아보면서 아직도 잘 모르거나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는 일제의 지배를 직접 경험하던 세대인데 1940년대에 조선에서 실시된 창씨개명이 우리 가족에도 적용된 적이 있는지 전혀 들은바가 없다. 조선에서는 강제적으로 실시된 창씨개명이 그 당시 만주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에게는 어떻게 실시되였는가 하는 점이 똑똑히 밝혀지지 않았다. 또 하나, 나의 가족에서는 일제에 강제징용을 당했다거나 일본군에 참가하여 전쟁에 나갔다는 얘기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이것도 만주국의 조선인들사이에서는 적은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혹시 내가 이 시대 역사를 너무 몰라서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광복을 맞고나서 동북아지역에서 토지개혁운동이 일어나고 국공내전이 발생하면서 나의 가족에서는 삼촌과 오촌 삼촌2명, 큰 누님까지하여 4명이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가하였고 (그중 1명이 전사), 조선전쟁시에는 3명이 조선인민군에 편입되어 전쟁에 참가하였다. 이들이 어떤 동기로 전쟁에 참가하였고, 이들이 이 전쟁에 대해여 어떻게 인식하였는지 가족사의 중요한 부분이면서도 정작 알고 싶을 때에는 당사자들이 다 고인이 되어버렸다. 통계에 의하면 중국의 국공내전시기 동북지역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이 약 6만3천명이 중국공산당측의 인민해방군에 참가하였고, 전사자가 3천5백여명 된다고 한다.

동북의 조선인들이 아직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으로 확정되기 이전이고, 조선족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기에 조선인의로서의 의식이 농후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적극적으로 중국의 혁명에 참가할 수 있었는지, 이부분에 대하여 지금까지의 판에 박힌 설명보다 좀 더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나의 가족에서는 조선전쟁이 일어나면서 아버지 형제들이 중국과 조선에 나뉘어져 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산가족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또 나의 아버지 세대까지는 조선식의 생활방식과 조선민족으로서의 의식이 강하게 남아있었고, 일상생활에서도 조선식의 복장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형제들 세대
나의 부모에게는8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우리 형제들 세대의 특징은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1958년의 대약진운동,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혁명등 중국의 굵직한 사회주의 운동에 대분분 직접 참여하였고,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나의 4명의 형제들이 홍위병으로 북경에 가서 천안문광장에서 모택동의 접견을 받았다. 1950년대 중국이 소련과 사회주의 형제국으로서 사이가 좋았을 때에는 나이든 형제들은 소련의 문학작품들을 많이 읽고, 외국어도 러시아어를 공부하였다.

나의 형제들 세대에 역사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한 것은 1980년대에 중국정부가 개혁개방을 실시하면서부터이다. 그 이전까지는 다수의 형제들이 농촌에서 농업에 종사했었는데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도시에 들어가서 장사를 시작하였고, 그 결과로 이제는 농촌에 남아서 농업에 종사하는 형제가 하나도 안남았다. 나의 사촌, 외사촌 형제들까지 시야에 넣으면, 1980년대에 우리 가족이 급격하게 변화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 이전에 다수가 농촌에 살던 형제들이 도시로 이주하였고, 직업이 농업에서 상업으로 바뀌고, 이제는 고향인 연변을 떠나 중국의 연해지역으로 나갔거나, 특히는 한국에 나가있는 경우가 많다.

나의 형제들 세대는 중국의 시회주의 체제하에서 성장하면서 사회주의 의식형태 교육을 많이 받아왔고, 부모들 세대에 비하면 중국화가 진척되었다. 그러나 조선식의 생활방식과 조선민족으로서의 의식은 강하게 남아있었고, 형제들 중에 조선민족외의 이민족과 통혼하는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과의 교류가 급속하게 증가되는 추세하에서 연변에 사는 형제들은 집집마다 한국 TV나 연예프로그램을 많이 보고 있고, 민족의식은 오히려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의 자녀들의 세대
나의 형제들의 자식의 세대에 이르러 제일 큰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이 부모들의 고향인 연변을 떠나고 있는 현실이다. 내가 일본에 유학하고 정착한 관계로 조카들의 다수가 일본에 나가게 되고, 또는 직업을 찾아 중국의 연해지역에 나가 있다. 조카들 가운데 연변에 남아있는 것은 대학교에 다니는 조카정도이다. 이런 현상은 나의 사촌, 외사촌 형제들 자식들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다들 일자리를 찾거나, 보다 좋은 생활을 추구하여 중국의 연해지역이나 해외로 나가 있다. 이러니 고향땅인 연변에는 나이든 형제들만 남게 되어, 우리 가족의 경우만 보아도 진짜 공동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추세속에서 나의 자녀들 세대에는 과연 중국조선족 공동체가 제대로 존재하고, 정상적으로 기능할 지 의문이 생긴다. 나의 형제들 세대까지는 이민족과의 통혼은 전혀 없었는데 자녀들 세대부터는 하나 둘씩 이민족과의 통혼이 늘어가는 추세이다. 그리고 다시 고향인 연변땅에 모여서 옛적처럼 친척들이 오손도손 모여서 살 가능성도 거의 없어보인다.

고조할아버지가 기막힌 대기근을 피하여 어린아들인 증조할아버지의 손목을 끌고 두만강을 건너 간도로 와서 쫓겨다니고 숨어지내면서 겨우 목숨을 부지했고, 할아버지대에는 소작농으로서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 어렵게 이 땅에 정착했다. 그리고 아버지대에는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쳐가면서 이 땅의 주인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렇게 힘들게 정착한 땅을 겨우 몇세의 후손에 이르러 너무나 손쉽게 떠나버린다는 것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김광림
Professor, Niigata Sangyo University
Visiting Scholar, Fairbank Center for Chinese Studies, Harvard Univesity
E-mail:guanglinj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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