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용서
보스톤코리아  2006-11-27, 01:07:48 
며칠 전 한국식품점에서 비디오 테잎을 빌려다 보게되었다. 내용은 오래 전 헤어졌던 사람들의 얘기와 더불어 사람을 찾아주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냥 헤어졌다 보고싶어서 그리워서 만나는 일이 아니고 원망과 분노 미움이 뒤범벅이 된 관계들을 화해와 사랑으로 승화시켜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보고싶지만 찾을 수 없는 사연의 사람들, 찾았지만 차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얘기는 가슴의 아림을 남겨 주었다.

한 여자는 어린 나이에 한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사랑하는 한 남자를 따라가 결혼을 하게되고 한 가족이 되었다. 따뜻한 사랑으로 대해주시는 시어머니의 그 사랑은 오랜 헤어짐의 시간이 흘렀어도 남아있을 만큼 그녀에게 큰 은혜의 사람으로 남았다. 시댁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었고 결혼 생활을 이어가면서 남편의 불성실함이 이내 드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첫 아이(딸)를 출산하게 이르렀다. 외롭고 무서움이 밀려오는 첫 출산의 시간에도 남편은 곁에 있어주질 못했다. 늘 그런 식의 태도에 실망이 커지고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신을 책망하고 타이르며 또 세월을 보내고 있을 무렵 밖에 잠깐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니 딸아이와 아들 녀석이 연탄가스에 중독이 된 상태였다. 너무도 당황하고 막막한 나머지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은 결국 남편이 밖에서 늘 바쁘다는 핑계로 삼았던 놀음판(화투판)장을 찾아간다. 그리고 이내 남편과의 이별을 선언한다.
따뜻한 사랑으로 안아주셨던 시어머님을 뒤로하고 두 아이들을 데리고 여인은 집을 나선다. 낯선 곳에서의 일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였다. 한 달을 그렇게 일자리를 찾다 결국 찾지 못하고 시어머님이 계신 곳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간 것이다. 반가이 맞아주시는 시어머님께 용서의 말과 부탁의 말씀을 남기며 곧 아이들을 찾으러 오겠노라고 떠나온 것이다. 그렇게 떠났던 시간은 금방 찾으러 오겠노라고 약속했던 그 약속을 20여 년이 되도록 지키지 못하고 살아왔던 한(恨)많은 한 여인의 실화의 얘기였다.
방송사에서의 만남을 주선해 주는 이 프로그램이 눈물겹도록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평생을 가슴앓이로 살아왔던 한 여인의 아픔을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커왔을 아이들이 자라면서 제 키보다 웃자라있을 아픔과 슬픔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그네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아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이 방송을 보면서 더 없는 감사로 눈물이 고여오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나와서 기다리는 장면과 어른이 된 딸과의 대화만이 오가고 있었다. 얼굴 없는 모녀간의 천륜이 파장을 내며 가슴을 울리고 있었다. 20여 년 동안 서로의 가슴에 남았던 슬픔과 고통 그리고 원망이 하나 둘, 툭툭 쏟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한 어머니와 딸에게서 속울음을 내며 흐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맑고 밝게 잘 자라온 딸의 모습을 보며 손녀와 손자를 보살핀 할머니의 정성이 곧 전해지고 있었다. 말씨와 함께 한 마디, 한 마디 물음에 대답하는 딸은 참 곱게 잘 자랐구나! 하고 어머니의 가슴에도 남을 만큼 보는 내게도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얼마 후 가슴에 한(恨)을 담고 살아 온 어머니와 원망으로 살아왔을 딸이 한 자리에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천륜의 이어진 끄나풀은 모녀를 하나로 만들어 놓았다. 부둥켜 않은 모녀의 오랜 가슴아픈 정이 흐르고 있었다. 얼마나 그리움으로 있었을까. 또한 얼마나 긴 기다림으로 살아왔을까. 헤어짐은 슬픔이고 고통이고 원망일 수 밖에 없으리라. 가슴에 담아 둔 긴 사연들이 그 슬픔과 고통과 원망의 뭉침들을 풀어주었으면 하고 마음으로 빌었다.
얼마 후 시어머님인 할머니와 아들이 한 자리에 마주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용서를 비는 며느리와 여전히 사랑의 마음으로 대하는 시어머니의 모습은 아름다움이었다.€ "어머니, 용서해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아이들을 예쁘게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는 며느리의 간절한 시어머님께 드리는 용서의 간청이었다. 또한 "아니다, 아니야! 네가 잘 못이 무에 있어! 내 아들녀석이 잘못인 것을..." 하시며 여전히 며느리를 따뜻하게 안아주시는 시어머님은 진정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만큼 귀중한 만남이었다. 이들 한 가정의 이별과 슬픔 그리고 원망이 또 다른 만남을 통해 따뜻한 위로와 '아름다운 용서'의 장이 된 것을 보며 우리의 삶 가운데 작지만 늘 일어나는 한 부분이구나! 하고 깊은 생각을 갖게 하는 날이었다.

때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것이다.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을 앞두고 가족간의 보이지 않는 실랑이들이 또한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화목해야 할 가족들의 모임이 모이기도 전에 삐그덕 거리는 모습은 아마도 이민생활이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일 게다. 서로가 바쁘게 살아가는 생활이 때로는 지치게 하기에 그럴 것이리라. 또한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보이지만 골이 더욱 깊어지는 경우도 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처한 입장과 이유는 다 있는 것이리라. 다만 내 입장만 이해해 주길 바라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일 게다. 상대방의 입장에 잠깐이라도 설 수 있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리라. 오래 된 앙금의 감정이 남아 있다면 자존심을 내려놓고 찾아가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리란 생각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이처럼 용기를 내어 찾아가는 일일 것이다. 또한 그 용서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진정 '아름다운 사람'일 게다. 서로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진정한 이 세상에서의 누림은 바로 '아름다운 용서'인 것이다. '아름다운 용서'는 바로 배려이고 사랑인 것이다.
(skyboston@hanmail.net)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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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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