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케어 판결과 더불어 헌법산책 (1)
보스톤코리아  2012-07-16, 11:57:28 
구사일생으로 오바마케어가 대법원의 합헌 판결로 생환하였다. 9명의 대법원판사 중 공화당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 5 명인데다가, 재판과정을 지켜 본 전문가들이 비관적으로 예상하였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은 공화당계 26개 주지사와 검찰총장이 제기한 소송을 비롯한 여타 다수의 유사한 소송에 대한 일괄적 최종 판결이었다. 원고들은 “모든 시민의 의료보험을 의무화하고, 아니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는 이 법의 핵심 조항이 위헌이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일견 당연한 것 같으나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은 “과연 대법원이 직접선거로 구성된 국회가 의결하고 대통령이 서명하여 확정된 법의 위헌여부를 판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헌법에는 국회가 시민 혹은 주 정부의 권리 등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할 경우 이를 심리 제재할 권리를 누가 갖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우 중요한 이 질문의 답은 건국초에 있었던 극히 사소한 재판의 판결에서 얻어진다. 당시 정치권은 뉴잉글랜드 지역의 엘리트와 상공인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연방정부 체제를 추구하는 연방당과, 반면 주정부의 자주권을 보다 지양하는 남부의 노동자 농민의 지지를 받는 민주-공화당으로 심히 양극화 되어 있었다. 마치 요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민주. 공화 양당간의 당파 싸움 양상 같다 하겠다.

1796년에 있었던 2대 대통령선거에서 연방당의 존 애덤스( MA 주 퀸시 출신)가 대통령으로, 부통령은 반대당인 민주-공화당의 토마스 제퍼슨이 당선되었다. 상. 하원선거에서는 연방당이 압승하였다. 당시 선거법은 현재와 달라 대통령후보자 중 최다 득점자가 대통령, 차점자가 부통령으로 선출되어, 대통령과 부통령의 소속 정당이 서로 같지 않을 수 있었다. 1800년에 있었던 제3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연임하려던 존 애덤스 대통령이 부통령이던 토마스 제퍼슨에게 참패하였다. 상. 하원도 이번에는 민주-공화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이임을 앞둔 애덤스는 연방당의 사법부내의 영향력을 최대로 지속하고자, 제퍼슨에게 정권을 인계하기 직전, 2개의 입법으로 16명의 판사직을 새로 만들고, 전원 연방당계 인사로 임명하였다. 또한 42명의 치안판사를 임명하고, 임기 마지막 날인 1801년 3월 3일에 상원인준을 마쳤다.

이제 남은 절차라고는 임명장에 대통령이 서명하고, 국무장관이 국인을 찍어서 본인에게 전달하는 것 뿐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임기 마지막 날 오밤중에 황급히 처리하다 보니, 다 준비된 임명장이 12명에게는 미처 전달되지 못하게 되었다. 다음 날인 3월 4일 부터 임기가 시작된 제퍼슨 대통령은 이들에게 임명장 전달을 거부한 것이다.

임명장 발급을 거부당한 12명 중의 하나인 마바리(Marbury)가 국무장관인 매디슨(Madison)에게 임명장 발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대법원에 직접 상고한 것이다. 즉 “1789년의 사법부 법”에 의거한 대법원 권한으로 국무장관에게 임명장발급을 명령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1801년 당시 원고는 대법관 전원이 자당인 연방당이라서 승소를 낙관하였다. 이 소송건을 알게 된 제퍼슨은 새로운 입법을 하여 대법원을 1년 이상 휴무 상태로 만들어 판결을 지연시켰다. 치졸한 정치 놀음은 예나 이제나 똑 같다.

드디어 1803년 대법원장이던 마샬(Marshall)은 다음과 같은 역사상 매우 중요한 판결을 하였다. 국무장관이 이미 법적절차가 끝난 임명장을 발급하지 않는 것은 마바리의 임명 권리를 위반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법원이 국무장관에게 임명장 발급 명령을 1789년의 법에 의거하여 내릴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그 사유로 이 법은 헌법에 명시한 대법원의 권한을 넘는 사안을 입법한 것임으로 위헌이다. 결국 마버리는이 소송에서 패소하였다. ( 참조 Marbury vs. Madison.) 마바리는 같은 소송을 하급법원에 다시 제소할 수는 있는 차선책이 있었으나, 5년 임기의 반이 이미 소비되었기에 이를 포기하고, 종내 치안판사가 되지 못하였다.

이 판결은 즉 “국회가 헌법에 규정되지 않는 법을 만들어 사법부를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샬은 “법이 무엇인지를 해석하고 판결하는 것은 대법원의 영역이며 의무이다.” 라는 명문을 남겼다. 이로써 사법부가 그 권한을 확정하고, 위상을 확립한 것이다. 이 후에도 이 판결에 도전하는 소송이 있었으나 모두 패소하였다. 현재 까지 대법원은 국회가 입법한160여개의 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마샬은 이 판결을 비롯한 여러 이정표적인 판례를 남겨 위대한 대법원장이라는 명성을 남기고 있다. 다음 회에는 오바마케어의 위헌 소송의 논쟁 초점이 된 헌법조항을 70여 년 전의 한 농부가 제기한 소송을 통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윤희경 (보스톤봉사회장,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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