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회 홍하상의 일본상인 탐구
보스톤코리아  2012-12-03, 12:09:15 
안녕하세요, 홍하상입니다. 일본사람들은 아직도 부채를 많이 씁니다.
일본에는 부채의 종류도 참 많죠. 우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쥘부채가 있고,여름 용 부채가 따로 있습니다. 여름용 부채는 디자인이 시원하고 가벼운 소재를 쓰죠.

또 가정집의 장식용 부채가 따로 있고, 히노키 소나무 즉 편백나무로 만든 부채를 따로 구분합니다. 또 차를 마시는 다회를 할 때 쓰는 부채도 따로 있습니다. 이 경우의 부채는 그림이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 그 특징이죠.
다도의 정신이 소박, 검소이므로 부채도 거기에 맞도록 사용하는 것입니다. 또 절에서 의식을 지낼 때 쓰는 부채도 있습니다.

헌데 에어컨과 선풍기가 있는 시대에 부채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시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을 알려면 휴대폰에서 가르쳐주는 시간이 더 정확하죠. 말하자면 시계는 이미 시간을 가르쳐주는 기능은 상실했습니다. 그렇다면 시계회사들이 모두 망했어야 하는데 망하기는 커녕 억대의 고가 시계들이 오히려 중흥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즉 손목 위의 예술로서 시계는 악세사리 혹은 부의 상징으로 변모한 것이죠. 이것이 손목시계의 개념의 진화입니다. 제가 일본 최고의 부채가게에 갔을 때 첫 번째 던진 질문도 <요즘도 부채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어콘이 빵빵하게 돌아가고, 최소한 선풍기라도 있는 시대에 그까짓 부채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죠.

그러나 회사 측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부채를 기능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필요없는 물건이지만, 예술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르다>는 것이죠.
말하자면 부채를 하나 만드는데 들어가는 원가는 5천원도 안됩니다. 대나무 쪼개서 거기에 창호지 한 장을 붙이면 되니까요? 이렇게 만들면 2,3만원 밖에 못받죠.

그런데 그 2,3만원짜리 부채의 창호지에 당대 일류화가의 풍경화가 그려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림을 그려넣은 순간, 그것은 2만원짜리가 아니라 2천만원짜리, 아니 그 이상이 됩니다. 이것이 예술의 측면입니다. 부채가 바람을 일으키는 기능적인 측면은 상실했지만,대신 예술의 측면을 살리므로서 부채라는 무용지물의 물건을 고가로 재탄생시킨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사람들중에 잘 사는 집엘 가보면 거실에 길이가 2-3미터에 달하는 대형부채가 걸려있고, 그 앞에 수억원짜리 닛폰도 즉 일본 명장의 칼이 놓여져 있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부채나 닛폰도가 모두 기능적으로는 모두 필요없는 물건입니다. 요즘 총이나 대포가 있는 시대에 닛폰도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나 부채도, 닛폰도도 모두 일본인들의 정신의 상징입니다. 바로 그 부채를 들여다보면 금박, 은박, 자수가 놓여져있고, 거기에 일본의 풍경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부채들은 값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합니다.
또 기업체의 접견실 같은 곳에 가도 수억원짜리의 대형부채가 걸려있는 것을 종종 보게됩니다. 또 일본의 일류호텔에서는 에어콘이 빵빵 돌아가고 있는데 부채를 꺼내서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신사나 아주머니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대개 쥘부채로 길이가 20센티 정도 밖에 안됩니다.

호텔의 커피샵에서 부채를 살랑살랑 부치고 있는 사람을 보게되면 웬지 멋과 여유가 느껴집니다. 그 부채들을 자세히 보면 거기에도 아름다운 원화의 그림이 그려져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비록 작은 쥘 부채이지만 누군가 당대의 명장이 그린 그림이 그려져있는 것이죠.이런 경우 그 부채의 가격은 수천만원짜리입니다. 하나의 예술품이죠. 부채가 기능이 아닌 예술로서 승화되어, 자신의 부와 권위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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