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규장각 도서의 수난-5
보스톤코리아  2013-04-22, 12:36:19 
이튿날 이른 아침이다. 아침 7시 경이라 아직 캄캄한 시간에 백낙준 문교부 장관과 최규남 차관이 오셨다. 장관 일행이 화물차간에 올라와 아무렇게나 실어놓은 책더미를 보고 수송책임자가 누구냐고 물으셨다. 차순영 주임이 저입니다 하고 나서자 자네가 이조 500년의 역사를 아느냐고 하시면서 관장은 어디갔는냐고 하셨다. 관장님은 안계신다고 하였더니 당장 새끼와 거적을 가져다가 포장을 하라고 하셨다. 군인들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가져다주는 새끼와 거적으로 책을 그런대로 포장하고 나니 또 하루가 저물었다. 서울의 화물차 종착역에는 군인들이 경비하고 있어서 마음대로 차에서 내려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차순영 주임이 알려주기를, 우리가 탄 화물차에 경무대, 국립박물관, 덕수궁 박물관, 창덕궁 박물관, 국립도서관 등이 한열차에 있다고 했다. 국립박물관, 민족박물관, 창덕궁, 국립도서관 직원의 가족들도 동승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우리들 서울대학교 도서관 직원은 모두 독신이라 딸린 가족이 없어 홀가분했다.

다음날 오후에 김두현 총장의 가족이 차에 올라왔다. 화물차는 3일 후인 1950년 12월 7일 아침에 서울역을 출발했다. 이태희 화물 열차의 수송총책임자는 국립박물관 관장 김재원 박사였던 것 으로 안다. 김재원 박사는 “12월 7일 아침 문교부 장관에게 가서 부산으로 떠난다고 보고했다” 고 했다.

화물열차는 겨우 영등포까지 가서 정차하고 말았다. 이 때 이병도 관장이 새로 발령을 받고 짚차로 급히 쫓아오셨다. 관장님이 계시니 훨씬 마음이 놓였다. 나는 규장각 도서의 부산 소개가 후일에 반드시 논의될 것 같이 생각되어 경비군 장교에게 부탁하여 노트와 잉크, 그리고 펜을 얻어서 <사서일지> 를 쓰기 시작했다. 그 때 작성한 <사서일지> 가 <서울대학교 25년사> 편찬 시 자료로서 제공된 것으로 안다.

전쟁 시 국가의 보물과 이조실록의 피난과 보존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것은 1592년의 임진왜란 시 전주사고의 이조실록을 황해도 해주를 거쳐 멀리 평안도 모향산에 있는 보현사에 피난 소개한 사실이 그것을 잘 설명해준다.

이제 6.25 한국전쟁 시 규장각 도서가 어떻게 해서 부산에 소개하게 되었는지를 말해보자. 전 연세대학교 도서관장 민영규 교수가 말하기를, “당시 문교부장관인 백낙준 박사가 국립박물관의 고고미술풍과 서울대학교의 규장각 도서를 소개 시키기 위해서 이승만 대통령의 제가를 받아 부산으로 옮기게 하였다” 고 했다.

그런데 전 국립박물관 관장 김재원 박사의 말은 약간 다르다. 김박사는 국립박물관의 고고미술품의 부산피난소개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의 문정관 크네즈 박사를 만났을 때 그분이 말하기를, 국립박물관의 미술품을 될 수 있는대로 빨리 옮기는 것이라고 해서, 그분의 권고에 따라 백낙준 문교부장관을 세번이나 찾아가 서울시민이 동요하기 전에 서울을 빨리 떠나야 하겠다” 고 말씀드렸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얼마 아니하여 백낙준 문교부장관께서 친필로 허락한다는 영문 서한을 보내주셨다. 그래서 크네즈 박사에게 부탁하여 미 대사관으로부터 트럭 한 대를 빌려 1950년 12월 4일 오후 오후 7시가 되어 어둡기 시작할 때 서울역으로 옮겼다” 고 했다. 그런데 민영규 교수는 말하기를, “당시 문교부 장관이었던 백낙준 박사가 트럭 8대를 동원해서 그중 5대는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으로 보내고, 나머지 3대의 트럭은 국립도서관으로 보냈다고 했다. 그런데 서울대 도서관은 규장각 도서 중 귀중본인 승정원 일기, 비변사등록, 이조실록 등 우리나라의 역사가 담긴 문서들을 안전하게 부산에 소개시켰는데, 국립도서관의 경우는 부산에 내려온 도서가 금박을 입힌 외국판 백화사전류 였다는 것이다. 민영익 교수의 이 말은 백낙준 박사로부터 직접 들은 말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 도서관에 역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귀중한 가치가 있는 책을 아는 사서가 과연 있었을까 의문이다. 어쨌든 규장각 도서의 부산소개는 국립박물관의 미술품과는 별도로 백낙준 박사의 특별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보물의 수송을 위한 철도편이었다. 당시는 전쟁 중이라 한국의 철도는 모두 유엔군의 RTO 에서 관리하고 있어서 군용 외의 사용은 어려웠던 것 같다. 김재원 국립박물관 관장은 말하기를, “미 대사관의 문정관 크네즈 박사의 주선으로 RTO 에서 화물차 한대를 받아 물품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역시 화물차를 얻는데도 크네즈 박사의 노력이 컸던 것 같다.

아시다시피 미 대사관의 문정관 크네즈 박사는 한국사람을 좋아했던 친한파이다. 그는 한국 문화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다방면으로 연구한 분이다. 그는 경상남도 김해 지방의 취락 구조를 조사 연구하여 뉴욕 주의 Syracuse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사회학교수 이상백 박사와도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크네즈 박사의 부인이 전 영화배우 최지애 씨 라고 들었다. 한국말이 능통하다. 그는 한국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워싱턴의 Smithsonian Institute 내에 한국관을 설립하고 큐레이터로서 그 관리를 책임맡은 관장이기도 하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크네즈 박사를 두번 만난 기억이 있다. 내가 미국에 와서 하버드 대학교 옌칭도서관에 근무 할 때이다. 크네즈 박사가 전화를 걸어 농담 조로 “Mr. 백이 미국에 와 있으면 어떻게 해?” 하면서, 한국의 옛날 물래방아를 얻고 싶은데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하기에 합천 해인사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옛날의 물래방아를 보았는데 지금은 그런 것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크네즈 박사는 한국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거니와 한국을 참으로 좋아했다.


백린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 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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