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보스톤코리아  2013-06-24, 14:38:49 
보스톤의 봄은 짧다. 한창 봄인가 했는데, 여름 척후병이 이미 다녀갔다. 곧 본진과 함께 떼여름이 닥칠 게다. 그렇다고 여름과 가을이 긴 것도 아니다. 겨울만 길다. 여름 소낙비가 퍼붓는데, 장마 채비는 마치셨는지? 천둥에 번개가 예사롭지 않으니, 지은 죄 너무 많아 두렵다.

봄이 오는 즈음일 게다. 시인묵객은 동백을 그리워 한다. 노란 동백이라 했다만, 동백은 붉어야 할 듯 싶다. 붉디 붉은 동백은 선운사가 제일이라 했다. 미당과 정호승 시인과 가수 송창식도 선운사 동백을 읊었다. 시인 최영미가 읊조린 동백이 도드라진다. 그렇다고 미당의 동백이 모자란다는 말은 결코 아닌데, 걸죽한 농주 냄새가 짙다. 최영미의 동백은 선선하다는 말이다. 읽으면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고, 어렵게 피는 꽃이 더 쉽게 지는가 보다. 
꽃이/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아주 잠깐이더군 선운사에서 중에서 (최영미)

선운사는 동백이 오히려 더 유명한 모양이다. 미국에 사는 나야 그냥 시로, 글로, 사진으로 보고 만족한다. 그런건 아쉽다. 한국에 선운사가 있다면, 보스톤에는 콩코드가 있다. 
유홍준은 ‘아는 만큼 보인다’ 했다. 알지 못하고 보면 콩코드 월든 폰드는 그냥 평범한 호수일 게다. 하지만 흔치 않은 스토리를 얹었고, 소로우가 그 일을 맡았다. 법정스님은 월든 폰드를 보기위해 서너번 보스톤에 오셨다 들었다. 스님이 소로우를 매우 좋아 했고, 스토리를 익히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호수를 보고자 했던 날,  날은 흐렸다. 저녁 무렵 가을 낙엽이 몇잎 떨어지니 그럴싸 했던 기억이다. 스토리를 대충이나마 알고 보았기 때문일 게다. 월든 폰드는 우리집에서 멀지 않다. 

= 피천득선생도 오십년도 중반과 칠십년 중반에 여기 보스톤에 오셨단다. 한 일이년 지냈는데, 콩코드 방문기가 인상적이다. 헌데, 선생은 왜 월든폰드에 대한 글을 남기지 않았는지 그건 모르겠다. 내가 과문한 탓인가 보다. 하지만, 선생이 남긴 번역중 이건 인상깊다. 영국군 전사자 비문을 번역했다. 영문학자의 번역이니, 비문碑文이 차라리 아름답다 해야 한다. 

‘그들은 3,000 마일을 와 여기서 죽었다/ 과거를 옥좌 위에 보존하기 위하여/대서양 건너 아니 들리는/그들의 영국 어머니의 통곡 소리’
“They came here three thousands miles/and died to keep the past upon its throne/ Unheard beyond the ocean tide, /their English mother made her moan.”
금아 선생은 ‘모닝코트에 실크모자를 쓰고 찰스 강가를 걷고 싶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은 찰스강가를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걷고싶다 했는데 말이다. 내가 조급한 건지, 오래되어 그런건지 그건 알 수없다.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배웠으니 오래되기는 오래 되었다. 하긴 모닝코트에 실크모자를 쓰고 찰스강가를 걷는다면 그건 참 뭣 할 게다. 찰스강가를 자동차로 다닐 적엔, 내 스스로 피식 웃는다. 어설픈 내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은 없을 지라도, 한여름에 찰스강변은 걸을만 하다. 강바람이 시원하고 가슴이 트인다. 겨울 눈덮인 찰스강변도 그리 나쁘지 않다만 말이다.

선운사 동백과 콩코드와 찰스강변은 사과와 오렌지만큼 다르다. 헌데, 부질없이 한꺼번에 밀려 왔다. 같은게 있다면, 선운사와 꽃을 찾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듯, 콩코드도 관광객을 심심치 않게 부른다. 봄과 여름과 가을이면, 렉싱톤 배틀그린 앞에 선 관광버스를 자주 본다는 말이다. 한국 선운사 만큼이야 아니겠지만, 주말이면 더 붐빈다. 관광객들은 콩코드까지 다녀 올 게다. 피천득 선생이나 법정스님이 감탄해 했던 장소를 직접 가까이서 볼 수 있는게 참 신기하기도 하다. 책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감흥이라는 말이다. 보스톤에 사는 것은 분명 축복인데, 꽃은 쉽게 진다. 
꽃이/지는 건 쉬워도/잊는 건 한참이더군/영영 한참이더군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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