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회 홍하상의 일본상인 탐구
보스톤코리아  2013-06-24, 14:52:14 
매트릭스와 <글로미스>
무라타 제작소의 독자경영 정보시스템인 <글로미스>는 무라타의 전 영업조직과 R&D부분 및 생산 팀이 연결된 온라인 네크워크이다. 이 단말기에는 영업직원들이 입수해온 고객들의 신제품 요구에 대한 정보가 낱낱이 입력된다. 이러한 입력내용을 연구개발팀이 분석하여 장차 예상되는 부품수요를 예측한 후 개발에 착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불필요한 낭비를 없애고 고객이 원하는 신제품을 순발력 있게 공급할 수 있다. 무라타 제작소는 매출이 중소기업 수준을 넘어 대기업수준인 4조 엔 이상이다. 따라서 그들은 대기업 병에 걸리지 않도록 늘 노력해 왔다. 예를 들면 제품공정별로 정교한 독립채산제를 실시하여 철저하게 손익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매트릭스 경영이다. 무라타는 하나의 회사이지만 그 안에는 3000개가 넘는 독립채산제 시스템의 단위조직으로 세분화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무라타의 경쟁력이다. 

무라타 제작소의 3000개나 되는 책임조직은 공정, 제품, 본사기능이라는 3차원 매트릭스로 관리된다. 공정별 비용관리, 설비투자의 경제성 계산, 설비 생산성 등 과학적인 관리 비법이 이미 90년대 초반 완성되었다. 이렇게 독립된 각각의 조직은 스스로 손익관리를 체크한다.

예를 들어 판매부분은 제조부문으로부터 사내 가격으로 제품을 싸게 산다. 그리고 이 제품을 외부 고객에게 비싸게 팔아 영업이익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서 본사 공통비용인 일반 관리비와 연구 개발비를 뺀 금액이 바로 순이익이 된다. 그리고 각 조직에는 자본을 분배한다. 이 자본은 공짜로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이자를 부가한다. 그 결과 무라타 제작소는 공장 가동률이 60%만 넘으면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하다 보니 부품업계에서는 늘 최고의 이익을 내는 업체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무라타 제작소가 처음부터 이렇게 잘한 것은 아니다. 1957년 무라타 제작소는 처음으로 미국의 일렉트로닉스 쇼에 참가 했다. 거기서 그들은 미국시장의 기술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리고 미국 시장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사내의 반대가 매우 컸다. ‘일본은 흑백텔레비전의 성장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무리해서 수출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본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미국시장에서 승부를 걸었다. 결국 미국 최대의 자동차 회사인 GM자동차에 전화용 필터를 채용하도록 협상했고 일본의 전자부품의 회사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에 공장을 건설했다. 

공장이 설립되면서 생산된 부품에 대한 고객의 반응을 살폈고 현지인을 고용하여 지역의 주민과도 유대감을 형성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성공을 거두었고 당시 라이벌 그룹이었던 미국과 유럽의 부품회사들은 모두 망하게 된다. 기술 판매에는 스피드가 따라야 하고 그것을 응용해야 하며 시장에 뛰어들어야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1엔짜리 부품도 만들어라
무라타 제작소는 단돈 몇 엔 짜리 부품까지 생산 납품하는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냉정한 기술개발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완성품 메이커가 강력하게 코스트 다운을 요구하면 거기에 맞춰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휴대폰용 필터를 1mm이하까지 극소화시켜 만든 후 개당 몇 엔 정도의 싼 가격에도 납품했다. 값싼 부품도 양이 많으면 회사에 큰 이익을 안겨준다는 전략이었다. 개당 단 1엔의 부품이라도 만들어서 단 몇 전을 코스트 다운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무라타 제작소는 코스트 다운을 위해 이처럼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상대는 세계 시장이다. 어쨌든 지금은 세계를 상대로 물건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세계의 흐름을 민감하게 살펴 거기에 대응하고 거기에 맞는 경영체질을 만들어야 한다. 창업 당시의 벤처 정신을 다시 한 번 부활하자’

2007년 6월 28일, 무라타 타이다케시 회장이 사장자리를 동생 무라타 코오 사장에게 넘기면서 회사 설명회에서 한 말이다. 무라타 타이다케시 사장은 1991년에 취입하여 16년간 대표이사 사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6년간 연결매상, 영업이익을 모두 배가 시켰다. 그 배경에는 서로 다른 아이디어로 경영을 했던 동생이 있었다’ 라고 일선퇴진의 이유를 밝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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