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회 홍하상의 일본상인 탐구
보스톤코리아  2013-07-29, 12:16:44 
가부키 <충신장>의 제7막을 팔다 
충신장(忠臣藏)은 일본 최고의 가부키이다. 충신장이 몇 년에 한번 오랜만에 막을 올리면 문화계가 술렁이고, 관객들은 열광한다. 스토리 자체가 압권이기 때문이다.
충신장은 일본 가부키 계의 독삼탕(毒蔘湯), 즉 기사회생의 묘약으로 불리우면서 가부키가 침체에 빠졌을 때 올리면 가부키계 전체가 살아난다는 가부키의 대표작이다.
충신장은 88년 서울 올림픽 때 국립극장에서도 공연된 적이 있는데 남의 나라 이야야기지만, 한국인의 정서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어 관객전원의 기립박수를 받은 가부키의 명작이다.

<지방의 성주였던 아사노(淺野)는 도쿄로 불려와 쇼군의 성에 매일 출퇴근한다.
쇼군의 집사장이었던 기라는 남몰래 아사노의 아내를 탐내고 있었는데 좀처럼 틈이 보이지 않자 어느날 아사노에게 아내의 치마폭에 싸여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며 모욕을 준다. 아사노는 참고 참았다. 그러나 우물속의 붕어같다는 기라의 모욕에는 더 이상 분을 참지 못하고 그만 칼을 빼어들고 기라의 머리를 내려친다. 기라는 죽지않고 부상만 당했으나 쇼군의 성에서 칼을 빼어든 것은 쇼군에 대한 모반에 해당하므로 쇼군은 그에게 할복자살을 명한다.

아사노는 꽃보다 붉은 네송이 장미가 네귀퉁이에 꽃힌 두장짜리 다다미에서 할복한다. 아사노는 숨이 끊어지면서 아사노의 심복인 가로(家老) 오오이시에게 눈빛으로 뭔가를 당부한다.오오이시는 주군인 아사노의 초상을 치르고 괴로워한다. 주군의 눈빛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엄청난 일이었다.  그는 기온의 요정 이치리키에서 매일 술을 마시며 술로 나날을 보낸다. 그때 아사노의 부하들이 이치리키에 찾아와 오오이시를 타박하며 일을 결행하자고 의분을 보인다.

결국 오오이시와 47인의 사무라이들은 기라의 저택을 급습, 기라의 목을 잘라 그것을 아사노의 무덤에 바친다. 아사노의 눈빛이 의미한 그 복수를 한 것이다.
그 얼마후 오오이시와 47인의 사무라이 전원에게 할복자살하라는 쇼군의 명령이 떨어진다. 결국 47인 사무라이 전원은 할복하고 아사노 가문은 멸망했다.
바로 그 오오이시가 술을 마시면서 방황하던 요정이 이치리키이고,그에게 복수를 결행하자고 부하들이 찾아 온 곳이 이치리키인데 그것이 충신장의 제7막 부분이다.
그런데 정말로 오오이시가 이치리키 요정에서 술을 마시며 방황한 내용이 충신장에 있는가는 의문이다. 충신장은 워낙 대본의 종류가 많고,지방에 따라 스토리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이치리키 측은 <판명수본 충신장>에 따랐다고 하고 있다. 

음식 아웃소싱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매년 3월21일, 이 날은 그 오오이시가 할복자살한 날, 즉 제삿날이다.
이날 이치리키에서는 충신장의 제7막이 공연된다. 충신장의 스토리는 일본 전국민이 마치 우리나라의 춘향전처럼 다 알고있는 이야기이다. 그 중의 제7막만 공연해도 앞뒤의 내용은 다 안다.
3월21일, 이치리키는 미리 손님들을 초대하거나, 예약을 받아 공연을 하고 공연 후에 음식과 술을 판다.요정은 불단을 치운 곳이어서 손바닥만하지만,역사의 현장에서 충신장을 보는 관객의 감회는 남다르다.

3월21일에는 수백명의 손님이 경향각지에서 몰려든다.
이치리키는 큰 요정이지만, 수백명 손님의 음식을 모두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모든 음식은 전체가 아웃소싱이다. 과거에도 이치리키는 고관대작들을 상대했기에 상당수의 메뉴를 전문요리점에 의뢰했으나 지금은 음식 전부를  아웃소싱하고 있다. 예컨대 생선회는 생선회전문점에서,스테이크는 스테이크 전문점에서, 채소반찬은 채소반찬전문식당에서 받으며 조개나 게 등 해산물도 산지직송 전문식당으로부터 받는다. 이치리키는 300년 역사에, 메이지 유신의 지사들이 출입한 역사의 무대, 이후에도 일본정재계들이 무시로 출입한 자존심 센 곳이다 

그러한 그들이 모든 음식을 아웃소싱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한달에 두 번씩 전체의 메뉴를 바꾸려면 막대한 인력과 노력, 노하우가 있어야한다.
둘째 아웃소싱해서 전문식당에 맡기는 것이 음식도 더 훌륭할뿐 아니라 직접 하는 것보다 돈이 적게 든다.
교토의 상인들은 전통을 중시하지만, 또 그 반면에 새로운 것을 기가 막히게 잘 도입하는 특징도 갖고 있다. 요정 이치리키 경영의 아웃소싱은 교토의 첨단기업으로부터 배워온 것이다. 전통요정이라고 해서 무조건 과거의 전통만을 고집하지 않는 신경영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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