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易地思之
보스톤코리아  2014-02-17, 12:08:50 
겨울 모진 바람이 스치칠 때 마른 나뭇가지는 무덤덤하지 않다. 바람이 부는대로 휘어지는데, 나무는 바람을 소리로 바꾼다. 스스로는 소리 낼 수 없으니, 바람이 나뭇가지 몸을 빌리는 거다. 나무는 몸을 빌려주는 대신 값을 받는가. 나무가 겨울에 하는 일이다. 
지난 주 보스톤엔 겨울 바람은 덜했다. 하지만 폭설이 내렸다.  혹시 눈피해는 없으셨는지. 이번주는 동계올림픽을 보면서 즐길 것이고, 정월 대보름이 있으니 이 얼마나 알찬 주週인가. 부럼을 깨야 한다.  

눈 내리지 않는 겨울 /추위를 붙잡고 /쇠똥에 불붙여 /들불의 축제를 준비한다 
찢긴 깡통 사이 /마지막 살아 있는 /빨 - 간 /숯불 하나 /손에 들고 
자꾸 자꾸 /불어 봐도 /따스한 그리움 /파묻히고 싶은 품속 
전설처럼 /아름다운 /내 고향 보이지 않는다 /달은 밝은데
(정월 대보름, 노태웅•시인)

고모부. 내 처남 아이들에게 내가 고모부다. 게다가 처형과 처제 아이들에게는 이모부다. 하지만 고모부나 이모부는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다. 설날에 한번쯔음 얼굴이나 볼까. 아니면 애들 결혼식에 가서, 사진이나 한장 찍힐까. 가깝다면 가까운데, 글쎄 뭐 그렇다고 그다지 애틋한 사이는 아니라는 말이다. 하긴, 난 애들 결혼식에도 가지 못했다. 너무 멀었다. 나도 예외가 아니니, 몇년에 한번씩 처조카들을 만난다.  ‘그래, 시집은 안가냐?’ 누구는 안가고 싶어 안가나. 표정이 그렇다. ‘너 공부 잘했잖아.’ 대학에 입학한 아이를 보고 한 내 이야기다. 누구는 그 대학에 가기 싫어 안갔나? 식구들이 모이면, 피해야 할 인삿말이란다. 깐에는 심심풀이로 물을 건 아닌데, 내가 어느새 노땅에 꼰대 돼가고 있다. 삼사십년전 내가 받았던 같은  위로겸 인삿말과 같다. 

아내가 주의를 준다만 자주 깜빡인다. 듣는 애들도 생각하란다. 위로에 덕담이 오히려 상처를 후벼 팔 수 있다는 거다. 헌데 문제는 공통화제가 뚜렷이 있는 게 아니다. 안철수 이야기를 하랴. 케이팝에 한류 이야기에, 텔레비젼 연속극을 화제에 올리랴. 아주 막연하다. 그러니 그냥 저냥 입다물면, 덤덤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담요펴고 고모부/이모부가 조카들이랑 고스톱 칠 수도 없다.

내게 병이라면 병인게 있다. 무거운 침묵을 참을 수 없는거다. 묵언수행해야 한다면 내게는 무지 무거운 형벌이다. 그러니 허접한 말이라도 내가 먼저 꺼내 침묵을 깨야만 한다. 하지만 번번히 썰렁할밖에. 법정스님 말씀이 떠오른다. 스님은 ‘말빚’이라 했다. ‘말빚’을 갚는 건 쉽지 않다. 말빚은 더 이상 지지 않아야 할텐데. 이것도 내게는 쉽지 않을 거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본다는 말이다. 듣는 사람입장도 깊히 생각해 보라는 말일터.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 돋힌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 (잠언 15:4, 공동번역)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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