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보스톤코리아  2014-03-24, 10:37:10 
눈밭에서 바퀴는 헛돌고 미끄러져 빠져나올수 없었다. 지난 가을 낡은 타이어를 갈았어야 했다. 한 일년 더 버텨볼 요량이 후회로 돌아 왔다.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스스로 다스릴 재간이 없었다. 지난달 강습한 스노스톰 때문이다. 눈발은 펜스를 맞춘 장쾌한 삼루타였다. 루壘상의 주자를 모두 홈으로 불러들였다. 나도 내 아내도 아이도 모두 홈으로 불려 들어왔다. 폭설에 우리는 집안에 있었다. 그래도 봄은 왔다. 꽃샘추위마저도 삼월이 데려간다. 춘분이 내일모레다. 

본 적이 없는 데도 본 듯한 풍경이 있다. 처음 인사 나눈 사람인데, 전에 만났었지 싶은 인상도 있다. 읽은 적이 없는데도, 읽었던 것 같은 착각처럼. 아니면 읽기는 읽었다만, 기억치 못한 글 줄이라 해도 될게다. 다시 읽을 적에  ‘예전에 미쳐 몰랐’고 새삼 다른 감동이  온다. 소월의 시詩가  내게는 그렇다.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은/'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소월,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아주 오래전이다. 소월의 시가 유난한 적이 있다. 정결치 않은 목로주점 낙서판엔 취한 낙서로 소월의 시가 요란했던 거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초혼, 김소월 중에서). 갈겨 쓴 꼬부라진 글씨는, 술에 취했음인즉.  고시에 실패했거나, 실연失戀했거나. 아니면, 괜히 흘러가는 청춘을 못내 아쉬워하는 젊은이들 소리였다.  

내 군대동기도 한동안 첫구절을 입에 달고 다녔다. 고무신 꺼꾸로 신겠다는 편지를 받은 다음이다.  헌데, 문제는 위로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앞으로 더 좋은 여자애 만날 수 있을거다.  빨리 잊어야 하지 않겠냐. 이런 말도 목젖까지만 올라왔을 뿐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마치 아픈 사람보고, 병원에 가봐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으니 말이다. 이런  말은 위로가 아닐진대, 듣는 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내버려 두는게 상책이었던 거다. 그 마음을 누가 알리요. 아픔을 누가 가늠하리요. 그 슬픔을 누가 위로 하리요. 

몇일 지나 그가 말했다. ‘나 말뚝 박을래. 앞으로 박하사라 불러라.’ 장기복무 지원한다는 말이고,  비장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 친구 끝내 하사 계급장을 달지 못했다. 그저 무탈하게 병장달고 제대했다. 그도 ‘사노라면 잊힐 날’ 있음직 했던 거다. 참, 내가 그 친구 연애편지를 몇번 대필해줬다.  행여 내 대필연애편지가 그의 실연에 영향이나 없었을까 은근히 찔렸다. 

영변 약산에 진달래 피듯, 내 집 뒷마당에도 철쭉이 필거다. 진달래만 하랴만, 철쭉도 보기에는 그만하다. 철쭉 피는 봄날을 ‘기두린다.’  예전에 미쳐 몰랐던 다른 모습을 보일까?  
봄을 못내 기다리는 못 잊을 당신. 상춘賞春!

‘산산히 부서진 질그릇처럼 박살이 나고 말 것이다.’ (이사야서 30:14)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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