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63
보스톤코리아  2015-01-12, 12:04:51 
계속해서 지도관(조선연무관)을 들여다 보면, 조선연무관 공수도부는 서울에서 태동했지만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발전은 전라북도 전주를 중심으로 관세館勢를 확장하였다. 당시 전일섭이 1947년5월 전북 군산에 지관支館을 개관하였다. 그리고 1955년 전주를 중심으로 군산, 이리, 남원, 정읍 등 군郡 소재지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이 조선연무관이 ‘지도관’으로 개칭한 때는 한국전쟁 중이었다. 갑자기 초대관장 전상섭이 행방불명(납북) 되는 관계로 당시의 지도 사범으로 있던 윤쾌병이 이종우와 함께 ‘지혜로운 길’을 의미하는 ‘지도관’으로 바꾸고 1967년까지 이끌었다. 

그러나 지도관은 1961년 ‘대한태수도협회’ 통합과정에서 윤쾌병과 이종우간의 상반된 입장차이로 무덕관과 같이 심한 내홍을 겪었다.
이종우가 이남석(창무관), 엄운규(청도관), 현종명(청도관) 등과 함께 협회통합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반면 윤쾌병은 무덕관의 황기 관장과 함께 ‘종신제 최고 심사위원’를 고집하며 협회 통합의 대세에 동조하지 않았다. 
지도관 출신으로는 배영기, 이종우, 김복남, 박현정, 이수진, 정진영, 이교윤, 이병로, 홍창진, 박영근 등이 있다. 특히 지도관은 다른 관에 비해 대련(겨루기)을 중시해 태권도 경기화가 시작되었던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까지 각종 태권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이승완, 조점선, 황대진, 최영렬 등이다. 

지도관의 대표적인 분관은 이교윤의 한무관이다. 그러나 이교윤은 한무관의 뿌리는 지도관이 아니라 조선연무관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서 당시 조선연무관이 지도관으로 개칭되는 과정에서 정통성 시비에 문제가 내제되어 있음을 드러냈다. 지도관은 초대관장 전상섭에 이어 2대 윤쾌병, 3대 이종우로 이어왔다.

다음은 창무관을 살펴본다.99) 창무관彰武館은 윤병인尹炳仁이 1946년 서울 종로에 위치한 기독교 청년회관(YMCA)에서 ‘YMCA 권법부’라는 이름으로 창설하였다. 당시 윤병인은 경성농업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재직하면서 전상섭과 함께 조선연무관에서 무도를 가르쳤다. 윤병인은 어린 시절을 만주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중국무술인 ‘주안파’ 권법을 수련하였다. 그리고 해방 직전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하면서 공수도(슈토칸 가라데)를 배웠다. 중국무술의 경지가 높아 5단을 인정 받았으며 당시 일본대학에서 수도관修道館(슈토칸) 가라데의 창시자인 ‘도야마 간켄遠山寬賢’의 문하에서 수련하였다. 일본에서의 스승은 확실하지만 만주에서는 누구에게 배웠는지 기록이 없다. 

윤병인의 무술 실력이 대단했음은 분명하다. 도야마 간켄이 윤병인의 중국무술을 보고 한 눈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들은 서로 무술을 교류하면서 우의를 돈독히 다졌다. 그리고 윤병인은 일본대학에서 일본인을 모두 제치고 가라데부 주장을 맡았을 정도로 무술의 경지가 높았다. 하지만 여기서 윤병인과 도야마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가 아닌 ‘서로 무술을 교류한 관계’로 곳곳에 서술되어 있는것을 조금 짚어보고 넘어간다. 즉 도야마 간켄은 가라데를 가르쳐 주었고 윤병인은 중국무술을 그에게 가르쳤다는 것이다. 

윤병인의 높은 무술의 경지는 인정하지만 1939년경에 만난 그들은 윤병인이 갓 스무살의 청년이었고, 도야마 간켄(1888 – 1966)은 50대 초반이었다. 오키나와 출신인 도야마 간켄은 일본 본토에 가라데를 전파한 명인의 한 명으로 당시 일본대학 가라데부를 지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야마 간켄도 대만에서 생활한 적이 있기에 그다지 중국무술에 생소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남방무술을 수련했으며 윤병인은 북방무술을 수련했다. 이 정도의 무술의 달인이 과연 갓 20세의 청년으로 부터 무술을 배웠을까? 예나 지금이나 좀 상상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물론 가르친다는 것은 배움의 연장이다. 하지만 지도를 하면서 간접적으로 터득하는 것과 세대차이를 넘어서 대등한 관계에서 교류하였다는 표현은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또한, 도야마 간켄의 제자 목록에 윤병인 외에 한국인으로 윤쾌병(조선연무관의 창설자 전상섭이 행방불명된 후 지도관으로 개명하여 관장을 맡았음)과 김기황(1960대 미국으로 이주해 태권도를 전파한 초기 사범) 등이 사범으로 올라 있다. 따라서 윤병인만 도야마 간켄과 대등한 관계였다면 윤병인과 윤쾌병, 김기황의 관계가 애매해진다. 그래서 윤병인은 도야마 간켄의 애제자 중에서 가장 인정받는 제자라고 보는 것이 객관적으로 더 타당성이 있지 않을까?       

99) 참고 문헌: 태권도 현대사(강원식, 이경명 공저, 보경문화사, 1999), 태권도지도이론(김대식, 김광성 공저, 나남, 1987), 태권도의 역사 – 네이버 지식iN.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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