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국제시장
보스톤코리아  2015-01-26, 12:42:44 
  고은 시인의 시다. 비로소. 제목은 간결한데, 뜻은 깊다. 바로 앞세대일 게다. 어렵게 노를 젓고 저어 물살을 헤쳤을 것이다. 그런데 노를 얼마나 자주 놓쳤을 겐가. 얼마나 황당했을 겐가. 얼마나 절망했을 겐가. 얼마나 캄캄했을 겐가. 배 안에 타고 있던 똘망한 아이들 눈동자는 여전히 맑기만 했을 텐데, 뒤돌아 본 물이 넓었을 터. 눈 앞에 보이는 물은 더 넓고, 더 사나웠을 게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고은,  ‘비로소’)

  복고가 우세한건, 현실이 팍팍하기 때문이란다. 뒤를 돌아다 보는건, 노를 놓쳐버려 황당한 때일 게다. 세상살이가 팍팍한 분들에겐 매우 죄송하단 말씀을 전한다. 뒤따르는 세대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가 히트하면, 이런저런 해설과 평론이 붙는다. 영화와 문화평론가 뿐아니다. 사회학자들도 덩달아 나선다.  아마추어 문화평론가로 나도 한 몫 거든다. 한국영화 국제시장이다.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내 코가 벌써 싸아해졌다. 이미 잘 아는 이야기일테고, 뒤에서 옆에서 지켜보았고 자주 들었다. 내 외삼촌의 이야기이며 내 고모네 가족 이야기 인게다. 
  어머니는 자주 이야기 했다. ‘네 고모는 국제시장에서 세탁소를 했거든’ ‘그나마, 벌이가 괜찮았지’ ‘덕분에 네 형은 고모가 잘 챙겨줬지’ 그러니 국제시장이란 단어가 내게 그닥 생소한 건 아니다. 여러 번 같은 스토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친가와 외가 모두 피난민이었다. 내 외가는 범천동 산기슭에 피난민 보따리를 풀었고, 고모네는 국제시장 한 구석에 터를 잡았던 모양이다. 우리는 어디 대신동이라던가. 남의 집 문간방을 간신히 얻었단다. 세월이 흘러 찾아갔던 외가집 다락이었다. 멀리 내려다 보이던 부산항구가 회색으로 눈앞에 어른거린다. 흑백사진처럼 흐르는 듯, 맑은 듯 흐린듯 보이는거다. 굵지만 낮은 뱃고동 소리도 들렸다. 갈매기도 울었던가. 돌아와요 부산항이다. 

  내 외가는 황해도 사리원이 고향인데, 외할아버지 손에 끌려 온 식구들이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외삼촌은 산복도로를 따라 올라가던 그 동네에서 다 클 적까지 보냈다. 그러니 외삼촌은 진작에 부산갈매기가 되었다. 황해도 액센트도 부산지방 억양과 섞여 묘한 발음으로 변했던 거다. 부산 사투리 톤이 더 세게 들리니 국제화 된 것인지, 국제시장화 된건지. 외삼촌도 말할게다.  ‘부산에 살면 부산사람이지.’ 그런 외삼촌은 롯데의 왕팬이다. 뼛속까지 부산갈매기 되었다. 보스톤 레드삭스 팬 마냥 롯데 팬들도 대단하다 들었다. 하긴 부산사투리 듣고 있으려면 귀가 먹먹해 온다. 갈매기 떼가 동시에 울면 시끄럽다. 귀가 무지 따갑다.  

  외삼촌도 영화를 놓쳤을리 없다. 아니면 아예 외면했을 수도 있다. ‘뭐 뻔한 이야기인데. 나도 많이 고생했다 아이가’ 내 외삼촌 목소리가 부산 액센트에 실려 귓전에 울린다. 외삼촌이 조용히 소줏잔을 입에 털어 넣을게다. 이날 만큼은 황해도 억양이 더 무겁게 실려있을터. ‘아버지,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내 외삼촌이 내 외할아버지 기일에 한마디 되뇌이는 말일 게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마태 25:21, 새번역)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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