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터버블 (Filter Bubble)
보스톤코리아  2015-02-10, 12:21:42 
“필터버블(Filter Bubble)” 한국말로 하면 “넌 방울 속에 갇혔어!” 정도 되겠다. 미국의 뉴미디어 전문가 엘리피리(Eli Pariser)가 정립한 개념이다. 이용자의 성향을 놀랄 만큼 정확하게 분석하는 요즘의 인터넷 검색서비스나 소셜미디어들이, 이용자가 좋아하는 내용만 자동으로 공급하고, 평소 흥미를 갖지 않는 내용은 배제하기 때문에, 자연히 이용자의 시야가 마치 방울 속에 갇힌 것처럼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  이 개념을 좀더 쉽게 이해하려면,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당장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정치적 글과 그에 대한 댓글, 그리고 트위터 친구 리스트만 보면 된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소위 Web 2.0 시대의 스마트 서비스에는 영특한 알고리즘이 탑재돼 있다. 이용자의 정치, 문화적 성향뿐 아니라 사교관계 범위를 분석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알고리즘인데, 자주 라이크를 누르는 페북 친구의 댓글이 더 자주 검색되고, 자주 찾는 주제와 관련된 지식이 더 자주 결과로 나온다. (실례로 필자가 유학 오기 전 구글에서 검색을 하면 술집 주소가 먼저 나오기 일쑤였는데, 요즘은 위키피디아 내용이 첫머리에 나온다).  따라서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알고 싶어 하는 지식과 정보로만 둘러싸이게 된다. 평소 관심이 없거나 불편해하는 쪽의 정보는 알고리즘에 의해 친절히 차단된다.

이 “방울” 현상의 폐해를 보자. 진보적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새, 비슷한 사람들하고만 커뮤니티를 이루게 되고, 보수적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역시 끼리끼리 모이게 된다. 끼리끼리 모이게 되니, 브레이크는 없고 액셀러레이터만 있어 자꾸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것.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베”나 “폭*투*”, 그리고 지난 대선 당일 뜬금 없이 승리를 자신하며 현대판 ‘시일야방성대곡’을 올렸다 주변 친구들에게 열심히 사상검증을 당하고 있는 순진한 친구들이 이런 “방울” 이론을 잘 뒷받침한다. 진보와 보수의 대국적인 타협이 미덕이었던 미국에서도 소셜미디어가 보급된 이래, 유권자들과 정치인들이 점점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방울의 폐해다.  

요즘은 듣기 싫더라도 “꼭 들어야 하는 소식”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는 언론 매체들도 이런 “방울”현상의 확산을 더욱 가속하고 있다.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 전통의 파수꾼들이 허핑턴포스트나 버즈피드 같이 페이스북이나 구글 검색을 통해 세를 늘려가는 뉴미디어 경쟁자들과의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점점 비슷한 알고리즘 검색방식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언론사들도 뉴미디어 매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알고리즘 시스템 도입을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방울의 홍수 속에서 믿을 건 우리 자신밖에 없다. 그런데 정신만 차리면 생존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를 방울 속에 틀어 가둔 소셜미디어의 ‘친구맺기’ 기능을 통해 통해 자신과 사상이나 철학, 취미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정보를 교류하면 된다 (돌이켜보면 이런 식으로 서로 다름을 배워 한 단계 앞으로 나가는 게 인류의 생존 지혜이기도 했다). 

작은 방울 속에 갇힐 지, 아니면 방울 밖으로 탈출할 지는 당신에게 달렸다. 자신의 “방울”속에서 철 지난 “흑백TV”로만 세상을 보는 바보로 전락한 채 서서히 질식하기 보다는, 서로 다른 방울들을 한 데 모아 세상만한 거대한 방울 속에서 배움을 즐기며 사는 것이 어떨까.


김형주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플래그십 프로그램, 
공공정책학(Master of Public Policy) 과정에 수학중.
한국에서 방송기자로 9년.
잠시 유엔 한국 대사관에서 임시 공보관으로 근무.
언론과 정치, 경제 영역의 접점에서 진정한 리더십의 의미를 찾고자 연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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