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72
보스톤코리아  2015-03-16, 11:43:31 
일본 무술로 알려진 ‘가라데’, 하지만 가라데는 일본무술이 아니다. 물론 현대사적인 면에서 보면 일본 무술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지만 일본의 역사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무술이다. 가라데가 일본에 상륙하기 전에도 일본 본토에 체계화되진 않았지만 전래되는 무술이 있었다.(골법, 제상류 등) 우리나라의 역사만 봐도 백제가 일본과 무예를 교류한 흔적도 보이고, 또한 거의 모든 나라의 역사적인 기록을 볼 때 맨손격투기가 없는 경우는 드물다.

왜 일본이라고 없었겠는가? 하지만 현대 무술의 하나로 세계적으로 대단한 영향을 끼치고 서방세계에 무술의 일반명사 처럼 되어 버린 ‘가라데, Karate’는 1922년에 처음으로 일본에 상륙하였다. 가라데(당수唐手)는 오키나와 무술이다. 즉 류구琉球왕국의 무술이다. 오키나와는 류구제도琉球諸島를 가르키며 전체 면적이 약 2,389km2 이고, 55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군도이다. 크게 아마미군도, 오키나와군도, 사키시마군도 등 세군도로 나누어 지는데 매년 태풍에 시달리는 화산섬이다. 또한 1951년 부터 1972년 까지 미군정 지배하에 있었다. 

류구왕국은 일본과는 인종과 언어, 역사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나라로, 고래古來로 부터 독립왕국을 유지하면서(일본과 중국과의 조공관계 유지) 독립문명을 일구어 왔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오키나와가 스스로 신하로 칭하면서 우리나라와 많은 교류를 하였다. 태조 원년인 1392년 12월28일 류구국 증산왕 찰도가 예물을 바친 기록부터 1840년 3월에 조선인이 오키나와에 표착했다는 기록까지 무려 437건이 수록되어 있다. 이런 독립왕국 류구가 1879년에 ‘오키나와현’으로 일본국에 통합되었다. 그리고 가라데가 일본에 정식으로 상륙한 것은 후나고시 기친船越義珍(1868 – 1957)이 동경에 영주하는 해인 1922년이다. 

후나고시 기친은 ‘일본 가라데의 창시자’, ‘가라데의 아버지’, 근대가라데의 중조中祖’, ‘현대가라데의 창시자’ 등 수식어가 상당히 많다. 모두 다 타당한 표현인데 그는 오키나와의 ‘오키나와테唐手’를 일본본토에 가져와서 보편화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1917년에 사상최초로 본토 교토京都 무덕전武德殿에서 가라데 시범을 하였다. 그는 1868년에 오키나와에서 태어났으며 12세 무렵 부터 당대 가라데의 명장名匠 아자토 야스쯔네安里安恒의 문하에 들어가서, 후일 근대 오키나와테의 시조라고 일컬어 지는 이토스 야스쯔네(1832 – 1916년) 에게서 무술을 사사받았다. 그리고 나중에는 오키나와 사범학교의 무도교사로서 오키나와 전역에 가라데를 보급하는데 열정을 쏟았다. 

시범단을 조직하여  가라데의 체계적인 보급화에 힘쓰면서 무술의 이론적 정립에도 많은 족적을 남겼다. 그리고 그의 가라데 보급은 일본 본토로 향하게 되었다. 상기한 바와 같이 1917년의 교토 무덕전의 시범을 시발로 그의 원대한 꿈을 펼칠 기회가 주어졌다. 1921년 일본 왕실의 태자(동궁전하 東宮殿下, Crown Price)가 유럽을 순방하면서 오키나와도 방문하였다. 그때 후나고시 기친이 현립사범학교에서 태자가 관람하는가운데 가라데 시범을 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1922년에 일본 문부성이 주최하는 고무도박람회古武道博覽會에 참석하여 연무시범을 하고난 뒤 도쿄東京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라데(당수) 보급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도장을 열어서 기술적인 전수는 물론 ‘류구권법당수琉球拳法唐手’라는 최초의 무술관계 서적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다수의 대학교에 당수부를 설치하여 많은 젊은 학생들을 수련시켰다. 그들의 수련으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확대된 가라데의 열풍은 일왕이 살고 있는 궁중까지 불었다. 왕의 초대로 궁에 가서 시연한 그의 가라데 연무시범은 왕이 친람하는 관심까지 보이면서 일본 전역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1934년, 그는 그의 시작詩作에 즐겨 쓰던 아호인 ‘송도松濤’를 따서 ‘송도관松濤館’을 창설하였다.(우리나라 청도관의 창시자 이원국과 송무관의 창시자 노병직이 일본에 유학할 당시 후나고시 기친에게서 당수를 직법 배운 제자들이다. 그들은 귀국 후 송도관의 적통을 잇는다는 뜻에서 이원국은 ‘청濤관’을 창설하였고, 노병직은 ‘松무관’을 창설하였다)

당수도와 공수도는 같은 무술이고 발음도 같은 ‘가라데’이지만 처음에 오키나와에서 본토로 들어올 때는 ‘당수’였는데 1935년경 부터 ‘공수空手’로 이름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후나고시 기친의 저서 ‘공수도교범(1935년) 이전의 저술들은 모두 당수로 나오는데 이 공수도 교범을 시발로 이후의 저서에는 모두 공수도로 나온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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