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날카로운 첫사랑의 키스
보스톤코리아  2015-06-08, 11:48:11 
  날이 후덥했다. 그 다음날은 갑자기 서늘해졌다. 날씨가 급히 변하니 몸이 따라갈 수 없다. 여름을 넘길 채비는 다 하셨는지. 월하越夏준비 말이다. 보스톤 여름은 습하고 무덥다 . 그래도 겨울보단 백 번 낫다. 

  모든 담임선생님 성함을 거의 다 기억하고 있다. 고난?의 중학교 삼학년이었기에 그런가. 그 때 담임선생님 성함만은 떠올릴 수 없다. 초등학교 일학년, 이학년은 같은 선생님이 담임하셨다. 고운 처녀 선생님이셨다. (지금 선생님 모습을 떠올리면, 약간 뻐덩니에 주근깨가 제법 있었던가) 선생님은 검정 스커트와 흰색 브라우스 자주 입고 계셨지 싶다. 게다가 검은 구두에 흰양말이 매우 매혹적이었더랬다.  쳐다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나른해졌다. 내가 조숙했던가.  분냄새라고는 전혀 맡아 보지 못하며 자란 나에게, 선생님의 로션냄새는 혼몽한 세계로 나를 인도해 갔다. 선생님이 내 첫사랑이었던 모양이다. 만해의 님의 침묵이다. 국어시간에 이 시를 배우며 머리 큰 고등학교 이삼학년 사내넘들은 입맛을 다셨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란 구절에 정신이 산란해졌던 거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만해, 님의 침묵)

  과문한 탓이다.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다는 건 이제야 알았다. '첫사랑같이 중요한 생물학적 현상을 어찌 화학이나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첫사랑은 매우 중요한 생물학적 현상인데, 화학이나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게다. 아인슈타인은 생각이 과학에서 벗어나지 못했지 싶다. 내가 말을 바꾼다. ‘첫사랑은 생물학으로 설명해서는 안된다. 첫사랑은 인문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하려 해서는 안된다.’

  신문컬럼에서 첫사랑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장석주 시인의 시를 인용했다. 얼마나 애절했으면, 얼마나 치열했으면.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벼랑 끝에 서서 파도가 가장 높이 솟아오를 때/ 바다에 온몸을 던지리라.' 나에게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바다에 온몸을 던질 용기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 옛적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을 향한 사랑은 첫사랑이 아닌 모양이다. 내 아내를 위한 다면, 바다에 온몸을 던질수 있을지 모른다. 아내는 내 첫사랑인가? 아내의 말이다. ‘니 첫사랑은 나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저 웃었다. 

  날은 더워져 가는데,  ‘첫 사랑의 날카로운 키스/날카로운 첫사랑의 키스’ 라는 말이 떠오른는 건 웬일인지.  만해의 ‘님의 침묵’을 다시 읽으니 그런가.  세월이 가도 첫사랑의 기억이 날카로워 그런가. 첫사랑의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더욱 또렷한 그림자가 남아서 일까.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말도 같이 나온다. 진부한 표현이기는 해도 여전히 아련하다. 여름은 다가오고, 내리꽃는 한낮 햇빛은 날카로운 그림자를 만든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는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요한계시록 2:4)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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