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맨발의 청춘
보스톤코리아  2015-07-13, 11:35:04 
한 여름이다. 하지를 넘겼고 칠월이니 올해 후반기로 들어섰다. 폭설에 고생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일년이 벌써 꺾였다. 독립기념일 연휴는 잘 지내셨는지. 
  몇 달 전, 편지를 받았다. 보스톤코리아 독자로부터 온 육필편지였다. 졸문에 대한 찬사였는데, 내가 받은 최초의 팬레터였다. 편지를 보내주신 독자는 연세가 지긋하시기에, ‘신라의 달밤’ 과 ‘홍도야 우지 마라’를 더 익히 들으셨다 했다. 감사하게 편지를 읽으면서, 육십년대 초중반 ‘맨발의 청춘’이란 노래와 영화를 떠올렸다. 노래는 최희준이 불러서 나역시 귀에 설지 않다. 영화는 신성일과 엄앵란이 주연했더랬다. 영화를 봤던가. 내가 너무 어렸을 적인데, 어머니를 따라 봤을 수도 있다. 기억이 가물거리고, 확실치 않다. 

눈물도 한숨도 나혼자 씹어 삼키며
밤거리에 뒷 골목을 누비고 다녀도
사랑만은 단 하나의 목숨을 걸었다. 
사나이 이 가슴을 알아 줄 날 있으리라. 
(맨발의 청춘, 최희준 노래)

  한국음식은 뜨겁거나 맵다. 물론 차가워 맛이 더한 물냉면도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 음식에 비해 무지 뜨겁거나 맵다는 거다. 비빔냉면은 말하지 않아도 맵다. 뚝배기탕이야, 뜨거워 입천장이 데일 정도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맵고 뜨거운 음식을 먹고 나면, 이제 먹은 듯 싶다. 감기에 특효는 펄펄 끓는 콩나물국에 매운 고추가루 한 스푼 넣어 훌훌 마시라고도 하지 않았던가. 감기는 떨어질지 몰라도, 입천장은 남아 나지 않을 게다. 그러니 먹고 난 다음, 음식의 깊고 순수한 맛은 기억할 수 없다. 맵고  뜨거움이 모든 걸 덮어 버린거다. 

  한국 중앙지 칼럼을 읽었다. 이삼십대 젊은 세대에게 욕을 얻어먹는 건 베이비부머나, 그 전 ‘굳세어라 금순아’ 판 ‘국제시장 세대’가 아니란다. 오히려 사십대 후반과 오십대 초반이란다. 소위 ‘누린 세대’이고 삼팔육세대를 이른다. 팔십년대 초반엔 대학입시도 그닥 치열하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하고는 한창 거품경기가 괜찮았단다. 게다가 아임에프시기에는 사회초년병이었으니, 명퇴니 하는것도 피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그들도 나이들어 지금은 오팔육세대인가?  그 사람들 한창 젊었을 적엔 맨손에 맨발의 청춘이라 스스로들 생각했을 게다. 

  꽤 오래전 이 친구들을 이런저런 연유로 몇번 만난적이 있다. 그런데 만나서 몇 마디 나누었을 적에, 내게 충격은 컸고 그 후유증으로 몇일 우울했더랬다. 이건 순전히 내 느낌이고, 험담하려는 건 아니다. 그 당시 삼팔육세대들은 매우 똑똑하고 야무져 보였다. 헌데, 따뜻한 기운은 없었다. 언변은 청산유수였는데, 눈동자는 그닥 맑지 않았다. 말투는 공격적이었고, 상대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오히려 나는 무서웠고, 몇 살 더 먹은 게 미안했다. 세상을 먼저 살아 죄송하다 말해야 할 듯 싶었던 거다. 순수한 젊은 기상은 뜨거웠지만 매웠고, 떫었던 기억 뿐이다. 일본 단가 한편이다. 

‘홍시여, 이사실을 잊지 말게/너도 젊었을 적엔 무척 떫었다는 걸’

  맨발에 청춘에선 청바지와 트위스트였다. 삼팔육은 백바지였던가. 요사이, 한국여당 원내총무라는 이가 대통령에게 대드는 모양이다. 그도 삼팔육일텐데, 고집이 대단하다 했다. 풍문으로 듣는 소식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떫은 땡감이 익어 홍시가 되려면 아직 몇 달은 더 기다려야 할까. 백바지를 벗어던질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나?

‘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 (시편 103:5)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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