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뿌리 깊은 나무
보스톤코리아  2015-11-09, 11:54:58 
가을비가 내렸다. 바람도 불었다. 덕분에 달랑이던 나뭇잎이 뭉텅이 떨어졌고, 깊히 젖었다. 예상컨대, 마지막 가을비가 아니겠나. 곧 비는 눈으로 바뀔게다. 날씨 변덕이 심하다. 몸조심 하시라.

  아는 목사님의 성姓이 함씨이다. 그 분에게 본관本慣이 어디냐고 누가 물었다. 대답이 상당히 종교적이다. ‘나는 아브라함 함씨’.  월전月前에 아이가 물었다. 우리 본관이 어디냔다. 갑자기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 잠시 잊고 있던 본관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릴적에 몇번 말해 준 적이 있다. 당연하고도 자랑스럽게 다시 말해줬다. 게다가 아이가 아이를 낳는다면, 돌림자로 순淳자를 넣어야 한다는 말까지 해줬다. 

  어릴 적 어른들은 내게 물었다. ‘본관이 어디인고?’ ‘어디 어디입니다.’ 내 어머니가 가르쳐 준 대답이었다. 어린 내가 참 신기했다. 이렇게 대답하면, 연세드신 어른들 얼굴에 엷은 미소가 퍼졌다. ‘으~음’ 하는 낮은 탄식이 흘러 나왔다. 대견하다는 반응이고, 집안을 훤히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뿌리를 더듬어 알수 있겠다는 뜻처럼 읽혔던 거다. 어떻게 아는지 그건 알 수 없었다. 

 ‘뿌리’(Root)라는 책이 있다. 알렉스 헤일리가 썼고 70년대에 텔레비젼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 흑인노예 자손인 작가가 제 뿌리를 찾아간다는게 줄거리이다. 작가는 아프리카 서부 잠비아로 여행한다. 조상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인게다. 그의 선조 할아버지가 미국에 끌려와 생활을 했던 시절은 노예문서 기록에 나와 있다. 하지만 그 이전, 아프리카에서의 기록은 감감했기 때문이다. 노예 할아버지의 고향에는 문자가 없으니 문서기록이 있을리 없다. 단지, 동네 원로 한 사람이 부족部族의 역사를 외우고  있다. 구술口述되는 역사를 작가가 듣는다. 처음부터 말이다. 과연 어느 시기에  제 할아버지가 노예로 잡혔는지, 그게 궁금할 따름이었다. 어느 순간, 홍수가 나던 해에 백인들이 침공했고 많은 사람들이 납치됐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앞과 뒤의 고리가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할아버지 이름은 ‘쿤타킨테’였다. 소설을 읽으며, 영화를 보며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한구절을 이따금 떠올렸다. 국어시험에 자주 출제되었으니, 자연스럽게 외고 있었던 거다. 수십년전 일인데도 아직도 기억한다. 역사와 뿌리도 깊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용비어천가, 2장)

  동북아 공정으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가 위태롭다.  우리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라 부를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라 마땅히 불러야 한다. 홍길동이 아닌바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처지는 아닌거다. 헌데, 우리 할아버지를  한족漢族이 자기네 할아버지라고 우기고  있다. 만리장성 남쪽 사람들이 자기네 역사라고  떼를 쓰는 거다.  

  한국에서 국정교과서 논쟁이 한창이란다. 논쟁은  패싸움으로 번질 기세이다. 하지만 더 급한 건 동북아 공정을 막는 일이 아니겠나. 뿌리를 되찾는 일 이다. 내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라 부를수 있게  하는 일 말이다. 하여튼, 정치하는 친구들이나 먹물들은 목소리만 높다. 바람이 분다. 찾아야 겠다.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누가복음 1:73)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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