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장닭이 우는 소리
보스톤코리아  2015-12-07, 11:46:46 
  12월에 들어섰다. 대설大雪 근방이다. 겨울은 문턱을 넘어섰다는 말이다. 바람이 불어도 더 떨굴 낙엽도 없다. 굵은 나무가지는 뼈대만 앙상하고 을씨년스럽다. 전직 대통령의 부음을 들었다. 거산巨山은 YS의 호라 했다. 거친 세월 바람엔 거산巨山도 흔들리고 쓰러진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건 날씨탓 만은 아니다. 그의 아들이 감옥에 갈 적에 ‘우째, 이런 일이’ 라고 한탄했다던데. ‘우째, 이런 일이’

  YS가 내 눈에 보인 건 그가 사십대 초반일 때 즈음일 게다. 장년壯年의 그는 정치인 같지 않아, 도시스러워 보였다. 그의 자연스러운 머리결은 귀를 덮고도 남았다. 그는 장발단속에 예외였던 모양이다. 게다가 그가 신은 앵클부츠는 연예인처럼 보였다. 그를 보면 젊은 나도 가끔은 가슴이 설레였다. 그가 뭔가 앞장서 있는듯 했기 때문이다. (내 선배 하나는 그를 결혼식 주례로 세웠다.)  살벌하던 시절. 그의 모습은 이따금 텔레비전에서 봤다. 하지만 목소리는 텔레비전에서도 듣지 못했다. 사진 한장 달랑 얼핏 화면에 비추던 시절이었던 거다. 선거유세를 따라가 그의 웅변을 듣기에는 내가 너무 바빴다(?). 내게 그 양반은 그저 비주얼이었고, 오디오는 없었다. 대신 카더라 통신으로 귀동냥으로 그의 안부를 들었던 시절이다. 장발과 민주화는 동의어가 아니다. 하지만 같은 뜻으로 새기던 시대였던 거다.

  사진에서 봤다. 그의 연세가 높아지면서, 흰머리가 많아졌다. 염색을 했고, 짧게 머리를 다듬었다. 높은 직책을 맡았으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백발에 장발이라면 더욱 친근하고, 관록이 붙어 보였을 게고 더욱 아름답지 않았겠나 싶다. 잘 정돈되어 짧은 ‘새마을 스타일’에서 그의 정적이던 박 전 대통령모습도 얼핏 보였으니 하는 말이다. 내게 그는 장발을 휘날리며 거침없던 모습으로만 남아있다. 

  이육사의 광야이다. 하늘이 열리는 새벽, 닭이 우는 소리도 들리는듯 싶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 광야)

  목계木鷄. 장자에 나온다. 다른 닭들이 감히 범접할 수없는 위엄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YS가 닭장차에 실려가며 한 말이다. 절묘하다. 새벽에 울지 않는 닭은 수탉이 아니다. 횃대에 올라 울어야 한다. 목청껏 울어야 당당한 수탉인게다. 검붉은 벼슬을 곧추세운 장닭은 늠름하다. 딱벌어졌고 적갈색 깃털에 덮힌 가슴은 윤기 흘러 위엄이 넘친다. 그래서 자유한 야성의 장닭은 씩씩해서 차라리 아름답다. 그는 정녕 고개를 꼿꼿이 세운 수탉이었고 장닭이었으며 목계木鷄였다. 또하나, 그는 타고난 싸움닭이기도 했다. 목을 물려 피를 흘려도 맹렬히 달려드는 투계鬪鷄였던 터. 검투사를 보는 듯했더랬다. 그가 그랬다.

 까막득한 날에 장닭이 우는 소리를 듣는다. 장닭이여 안녕.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누가 22:61)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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