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21
보스톤코리아  2016-03-14, 11:46:15 
위화랑의 장녀 옥진궁주와 차녀 금진부인은 후처後妻인 오도부인이 낳았다. 오도는 처음에 김원종(법흥왕의 태자시)의 후궁이었다가 위화랑에게로 갔고, 후에는 법흥왕이 총애하는 아시공에게로 갔다. 위화랑의 본부인 준실부인도 법흥왕의 후궁이었다가 위화랑과 혼인했다. 그리고 위화랑과 오도부인이 낳은 두 딸 옥진과 금진 모두 법흥왕의 후궁이 되었다. 옥진은 처음에 박영실에게로 시집 갔다가 법흥왕의 후궁이 되었다. 옥진의 첫 남편 박영실과 낳은 딸이 사도태후로 진흥왕의 왕비이다. 그리고 법흥왕과 낳은 아들이 비대공이며, 비대공의 딸이 개원공주인데 6촌지간인 동륜태자의 후비가 되었다. 

동륜태자 김동륜은 진흥왕의 맏아들로 566년에 태자에 책봉되었으나 왕위에 오르지도 못하고 572년에 사망하였다. 동륜은 왕위에 오르진 못했지만 그의 장자 김백정은 후에 왕이 된 진평왕(신라 제 26대왕)이며, 진평왕의 딸인 손녀는 선덕여왕이고, 세째 아들 국반 갈문왕의 딸인 손녀는 진덕여왕이다. 동륜태자의 정비는 입종갈문왕의 딸 만호부인이다. 그러니까 고모가 부인이 된 것이다. 동륜태자는 색사色事를 즐기다가 죽었다. 당시 신라 사회는 색공色供의 풍습이 있었다. 이 사회적인 풍습을 신라인의 눈으로 읽지 않은면 ‘화랑세기’는 족내혼과 근친상간 등으로 현대 사람들의 성관념과 상당한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풍습으로 인하여 미혼의 처녀나 기혼의 유부녀를 떠나 대다수의 여자들이 왕과 귀족들에게 또는 상위 신분의 사람들에게 색사로 봉사하였다. 진흥왕에게는 후궁들이 많이 있었지만 특히 미실美室의 주임무는 색공이었다. 진흥왕의 장자 동륜태자 또한 색을 밝혔는지라 색사로 인하여 왕위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개에게 물려 죽었다. 당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던 미실은 왕궁에 들어가서 세종(지소태후의 아들)을 모셨는데, 세종하고만 관계를 한 것이 아니라 태자인 동륜과도 관계를 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륜태자는 더욱 적극적으로 나오고, 미실은 진흥왕과 세종이 알까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미실은 동생 미생으로 하여금 동륜태자에게 다른 여자들을 연결하며 관심을 갖게 하였다. 

그 결과 동륜은 진흥의 후궁인 보명궁주를 넘보았다. 보명은 처음엔 거부하였지만 동륜태자의 연모는 깊어만 갔고, 결국 보명이 거처하는 궁의 담장을 넘어들어가 통정을 하였다. 그리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보명을 잊지못하고 계속되는 월담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572년 3월 어느날 시종도 없이 혼자 담을 넘다가 그만 보명궁주가 기르던 큰 개에 물려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 이에 놀란 보명궁주가 궁중으로 안고 가서 치료를 했지만 새벽녘에 죽고 말았다. 동륜태자는 아버지의 후궁들을 연모하여 그들의 치마속을 헤메다가 개에 물려 비명횡사하면서 왕좌를 날려버린 비운의 태자였다. 이 ‘개죽음’을 당한 동륜태자의 사건은 많은 정치적 파장을 가져왔다. 물론 이 사건으로 인하여 미실과의 관계도 들통이 났고 미실은 궁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타고난 그녀의 미색美色을 뭇사내들이 초야에 그냥 묻혀두지만은 않았다.

동륜이 태자가 되기 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화랑세기 내용에는 성적으로 상당히 문란해 보이는 부분이 많지만 당시에도 정비正妃, 정처正妻를 첩들과 분명히 구분하였다. 특히 왕의 아들은 태자, 왕자, 전군으로 구분하였고, 정비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 왕자이며, 왕위계승권을 가진 아들은 태자였다. 그리고 후궁들의 몸에 서 태어난 아들은 전군으로 호칭했다. 지소태후는 진흥왕의 정비 사도왕후를 좋아하지 않아서 자신이 태종(이사부)과의 사이에서 낳은 숙명궁주를 진흥왕과 혼인시켰다. 즉 진흥왕은 씨가 다른 동복 누이와 혼인하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아들 정숙貞肅이 태어났다. 

그가 바로 정숙태자이다(이는 화랑세기에만 나오는 내용이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숙명궁주나 정숙태자의 기록은 없다). 진흥왕은 처음부터 동복 누이라는 명분으로 숙명궁주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지만 아들 정숙이 태어난 후 숙명을 왕후로 받아드렸다. 하지만 그것은 형식에 지나지 않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도를 정비로 받아드렸고 그가 정식 왕후가 되었다. 그들 사이에는 동륜과 금륜 두 아들이 있다. 그리고 566년에 맏아들 동륜을 태자로 책봉하였다. 한편, 숙명궁주는 왕후로써 왕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빈궁을 지키기 보다는 자신의 사랑을 찾았다. 월성에서 소문나게 잘생기고 문장을 잘하는 이화랑을 향하여 궁궐도 버리고 도망쳤다. 그리고 숙명은 이화랑과 불같은 사랑에 빠졌다. 진흥왕이 숙명을 폐하려하자 어머니 지소태후의 만류가 완곡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숙명으로 하여금 이화랑과 살게하였다. 이들이 낳은 아들이 신라 대승불교의 대법사 원광과 보리(김대문의 증조할아버지)이다.

이화랑은 4세 풍월주가 되었으며, 후일 숙명궁주와 함께 영흥사라는 절에 나가 불도에 전념하였다. 지소태후도 뒤따라 불교에 귀의하였고, 정숙태자도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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