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오염, 몸의 기억: 우번 식수 오염 사건과 대중 역학 (Popular Epidemiology) (2)
보스톤코리아  2016-06-06, 12:10:41 
(지난 주에 이어서) 
하버드 공중보건 대학원 연구자들의 협력과 우번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덕에 19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말까지 우번 지역에서 비정상적으로 높게 발병했던 소아 백혈병과 여타 주민 건강 문제의 원인이 독성 화학 물질로 오염된 식수였음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지난주 칼럼에서 언급했다시피 시민의 참여가 의학 지식을 생산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대중 역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의 첫 사건이었다. 

하지만 오염에 노출되었던 주민들은 이미 건강상의 여러 피해를 입은 후였다. 급성 림프성 백혈병의 발병은 198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줄어들었다. 가장 먼저 식수의 문제를 의심하고 더 깨끗한 환경 모임(FACE: For a Cleaner Environment)을 결성했던 앤 앤더슨의 아들 지미는 1981년 사망했고, 지미 이외에도 십수 명의 소아 백혈병 환자들이 사망했다. 유산으로 임신 중 아이를 잃었던 많은 엄마들과 선천성 기형을 안고 태어난 아이들의 상당수는 오염된 식수의 희생양들이었을 게다. 

누가 이 환경 재앙을 책임 질 것인가? 주민들은 사건 초기부터 오염된 식수 시설 근처에 공장이 있던 그레이스 (W. R. Grace & Company), 베아트리체 푸드(Beatrice Foods Company), 그리고 유니폼 업체인 유니 퍼스트 (UniFirst)를 유해 폐기물을 방출하여 수질을 오염시킨 주범으로 지목했다. 그레이스사의 우번 소재 Cryovac 공장은 식품 포장 장비를 생산하는 곳으로, 장비를 세척하거나 페인트를 희석하는데에 사용하는 케미컬 솔벤트를 방출한 것으로, 베아트리체 푸드가 소유한 John Riley 피혁 공장은 가죽 제품 제조 공정에 사용되는 화학 물질들을 흘려보낸 것으로, 유니 퍼스트는 섬유 세탁 과정에서 오폐수를 내보낸 것으로 의심할 만 했다.  (세 회사 중 유니퍼스트는 재판 전 단계에서 105만 달러를 배상하고 원고에서 빠지게된다)

결국 1984년, 앤 앤더슨을 비롯한 7인의 우번 주민들이 우번의 수질 오염과 그로 인한 백혈병 등을 유발한 주범으로 이 회사들을 고소했다. Anne Anderson, et al. v. W.R. Grace and Beatrice Foods 케이스다. 재판에서 제일 먼저 밝혀져야할 것은 ‘피고들이 인체에 유해한 오폐수를 방출했는지’의 여부였다. 두 회사는 당연히 오염물질 방출 사실에 대해 부인했다. 두번째로 원고(가족)들이 피고 회사의 유해 폐기물로 인해 백혈병을 얻게 되었는지를 따져봐야했다. 피고 회사를 대리하는 변호인들은 화학 물질이 백혈병을 일으킨 (100%)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거나, 원고들이 사용하는 많은 가정용품에도 트라이클로에틸렌 (TCE)을 비롯한 유해 화학 물질이 포함되어 있기때문에 자신들의 책임을 특정할 수 없다고 논증했다. 

1986년, 1심 재판 결과 법원은 그레이스 사에 대해 부주의로 식수 시설을 오염시켰다고 판결했다. 다만 베아트리체 푸드의 오폐수 방출에 대한 에 대해서는 증거가 불충분한것으로 판결하였다. 법원은 유해 폐기물을 흘려보낸 그레이스사가 원고들에게 800만 달러의 배상을 하도록 지시하였다. 

베아트리체 푸드가 책임을 모면한 데에도, 피해 규모에 비추어 소액인 800만 달러로 배상금이 책정이 된 데에도 사실 영화 씨빌 액션(Civil Action)에서 그려지고 있는 그 스토리처럼 기업들을 변론한 거대 로펌의 역할이 컸다. 사실 이 재판은 증거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원고측의 변호를 맡았던 잰 슐릭먼은 개인 상해를 전문으로 하는 소규모 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증거 수집을 위한 비용 260만 달러를 부채로 충당하다가 파산에 이르는 슐릭먼에 대조적으로 피고측 변호를 맡은 대형 로펌들은 증거를 피고측에 유리하도록 왜곡하는 능력까지 발휘한다. 게다가 피고측인 베아트리체 푸드를 대리하는 로펌이 동원한 법조계 인맥은 여러모로 피고에 유리한 판결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1987년, 중요한 증거가 원고측 변호사 슐릭먼은 항소를 제기했다. 베아트리체 푸드가 중요한 증거를 (고의로) 누락했음을 발견했기때문이었다. 슐릭먼은 이 증거가 베아트리체에 대한 1심 판결을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법원은 슐릭먼의 항소심, 상고심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고 1989년, 그레이스와 베아트리체 푸드에 대한 “민사 재판”은 종결된다. 

법정은 무책임한 기업의 편을 들었지만 그래도 반전은 있었다. 민사 재판이 종결된 다음 해인 1991년, 재판과 별도로 우번지역 지하수 오염의 실태를 조사했던 연방 환경 보호국 (EPA)이 이스트 우번지역의 5개 업체가 오염에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결론지었고, 우번지역은 환경정화와 피해 보상이 필요한 수퍼펀드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기업들은 총 6950만 달러를 배상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진실을 들을 수 있을 때, 그리고 사법 제도를 통해서 우리가 기업의 횡포나 권력의 남용에 맞서 싸울 수 있을 때 사회는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다.” –잰 슐릭만



보스톤코리아 칼럼리스트 소피아
us.herstory@gmail.com
소피아 선생님의 지난 칼럼은 mywiseprep.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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