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채식주의자
보스톤코리아  2016-06-20, 11:49:46 
  한여름의 문턱을 넘어섰다. 찬물에 밥을 말아 오이지와 먹어도 점심으로 그만 일게다.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상관없겠다. 그것도 아니면, 상추에 밥을 싸서 크게 한입 먹어도 좋다. 산사山寺에서 먹는 공양도 크게 다르지 않을터. 게다가 서늘한 여름날 저녁이면 그림이 살아난다. 마당에 평상을 펴고 저녁을 먹는다면 소찬이라도 낭만일게다. 검소한 밥상은 온전히 채식주의자로 만든다.

여름에는 저녁을/마당에서 먹는다
밥그릇 안에까지/가득 차는 달빛

아! 달빛을 먹는다
초저녁에도/환한 달빛
(오규원.  여름에는 저녁을)

  오래전 내 직장 상사의 이야기 이다. 한식이 대중화 되려면 세월이 필요할 때였다. 그는 스스로 채식주의자라 했던 사람이다. 대신 장소와 음식에 따라 까다로운 선별적 채식주의자였다. 그와 이따금 한식이나 일식으로 밥을 나눠 먹었다. 식사 중 그가 나를 자주 놀라게 했다. 그는 김치를 샐러드 먹듯 먹어 치웠던 거다. 맵지도 않나? 게다가 짠 쌈장을 덩어리로 상추에 밥과 같이 올려 아구아구 먹어댔다. 짜지도 않나? 통마늘과 쌈장에 게걸이 들린듯 싶었으니 말이다.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누구도 쉽게 젓가락을 쉽게 사용하지 못할 적이었는데, 그는 유연하게 수저를 사용할 줄도 알았다.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차라리 경멸하는 듯 했으니, 그도 마음만은 지독한 채식주의자 였음에 틀림없다. 그런 그가 집에 돌아가면 그의 아내곁에 접근할 수 없었다 했다. 마늘냄새가 보통이라야 말이지. 끊을 수 없게 당겨대는 생마늘이여. 역시 한식엔 생마늘인게라. 

  한국 소설가가 대단한 문학상을 받았단다. 장한 일인데, 제목이 재미있다. 채식주의자. 그런 그의 책에도 영어오역이 있었던 모양이다. ‘달리다 죽은 개가 (식용으로) 더 부드럽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는 말을 어떻게 번역했다 던가? 이런 말을 번역하기에 막막했을 게다. 번역은 원문과 사뭇 다를 것이 틀림없다. 서양에선 개고기를 알지 못할테니 적당한 말도 없을 것이다. 상황과 원문이 이럴진대, 적확한 말은 커녕, 번역은 당최 쉽지 않았을 게다. 또 있다. 닭도리탕을 ‘a thick chicken and duck soup’으로 옮겼다 했다. 그래도 번역이 옳네 그르네 할 것도 없지 싶다. 

  다시 옛 직장 상사이야기이다. 그는 소주를 즐거워 했고, 소맥 폭탄주를 즐겼다. 소맥을 파전과 입맛다시며 먹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막걸리를 권했다. 한모금 맛본 그의 말에 모두 넘어갔다. ‘왠 요구르트.’ 그런 그 사람과 닭도리탕은 같이 나눠 먹은 적은 없다. 역시 채식주의를 고집했으니 말이다. 나 또한 손에 뭍혀가며 닭다리를 뜯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글쎄, 닭도리탕이란 말도 순수 한국말이라던데, 옳은 영문번역은 무엇인가?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언 15:17)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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