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오징어 예찬
어릴 적 초등학교 교과서에 울릉도하면 대표적인 특산물로 삿갓 쓴 생선 오징어가 있다. "울렁 울렁 울렁대는 처녀가슴/ 오징어가 풍년이면 시집가요." 60년대 유행했던 가수 이씨스터즈의 "울릉도 트위스트" 우리영토, 독도를 지키겠다는 애국가적 노래 "독도는 우리땅" 70년대에 응원가로 널리 사랑 받던 이 노래 가사에도 오징어는 등장한다.

그 뿐인가. 여행을 떠나는 3등 열차 안에는 "심심풀이 땅콩이나 오징어가 왔으미야, 이상한 말투로 비좁은 손님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는 판매원. 한 집안의 큰 잔치에는 어떠한가, 얼굴보다 더 큰 오징어가면을 쓰고 신부 집 대문 밖에서 함 값을 흥정하며 동내사람들의 볼거리를 만드는 예비신랑 친구들. 꼭 있어야 할 제사상이나 고사상. 갖은 요리에 빠질 수 없는 재료 오징어, 선물용 등등. 이렇듯 훌륭한 국민생선(?) 오징어를 우리 국민과 싸잡아 비하 내지는 혹평을 하여 물의를 일으킨 사건도 있었다.

88년 서울 올림픽. 170여 개국이 참가한 거대한 잔치는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국민들은 열광하였고, 세계인이 모인 전국 최대의 축제를 부국강연의 염원과 더욱 성숙된 한국인의 상을 보여주기 위해 정부, 선수, 국민 모두가 일치된 마음으로 국위선양의 대열에 동참할 때였다.
세계 유수의 방송사들은  재미있는 볼거리,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인의 모습, 청결하면서 질서 정연한 행동, 친절한 웃음의 도우미, 임원들의 매끄러운 경기진행 등을 다투어 보도하는 등 취재열기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를 때였다.  미국의 올림픽 중계 독점 방송국인 NBC의 유명 앵커인 브라이언은 지각 없는 중계 내용으로 "여기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자에 운집한 한국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약한 냄새가 나는 오징어를 먹고 반입 금지된 소주를 마시고 있다."며 카메라 앵글의 초점을 오징어 먹는 사람들에게 수없이 맞추는 것이 아닌가.
미국 사람들은 오징어를 몬도가네의 혐오성 식품 정도로 취급하며 먹지 않는다. 그것도 그들의 음식문화 임에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한 많은 나라에서 먹는 음식을 자국의 잣대에 맞춘 보도는 남의 잔칫상에 재를 뿌리는 경우가 되고 만 것이다. 이에 국민들은 흥분했고, 정부는 즉각 항의 서한을 띄워 국민정서를 감안한 납득할 만한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한 NBC에서는 발 빠른 행보로 문제의 방송앵커를 급히 소환하고 사과함으로써 일단락된 씁쓸한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오징어가 있다. 어찌 오징어 사랑이 끝이 있겠는가? 10여 년 전만해도 동해 안에서만 잡히던 오징어. 초여름 보리가 익어갈 때쯤이면 동해안(삼척, 묵호, 강릉, 주문진, 속초)의 밤바다는 채 낚기 오징어 배로 불야성을 이룬다. 만선의 오징어 배가 들어온 항구마다 오징어 특수로 흥청대며 질퍽한 시장은 중계인의 고함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지구 온난화 현상이 해수면 상승 작용을 일으켜, 서해는 물론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오징어가 잡히니 이제는 울릉도 오징어가 아니라 대한민국 오징어가 되는 듯싶다. 어릴 적 어머니가 햇보리 한대 박 주고 바꾼 두세 마리의 귀한 오징어가 이제는 지천이니, 환갑나이인 필자에겐 오징어보다 햇보리 한대 박이 더 생각나는 것은 곱고 인자하셨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다음 호에 계속 연재됩니다)

최석천 전문 낚시인
최석천씨는 뉴욕지역에서  낚시 가이드와 미주, 남미, 유럽등지에서 전문낚시인으로 활동해 오셨습니다.  

낚시에 관한 문의는 330-774-6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