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惠)
보스톤코리아  2007-07-31, 02:40:31 
신영각(한미 노인회 회원)

"’공부해서 남 주자’며 부부가 함께 손수 십자수(繡)를 떠서 수 백 명 청년들에게 나누어 준 사랑의 실천가" 라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순직한 배형규 목사(42)를 추모하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20절


하고 많은 날들 중에 하필이면 마흔두살 생일날, 머리와 가슴과 배에 열 발의 총을 맞고 세상을 떴을까? 서울 분당 샘물교회 창년부 담당 배형규 목사는. 만리타향 아프가니스탄에서 의료구호선교를 갔다가 탈레반반군에게 잡혀 22명의 선교단원들을 두고 홀로 소천 했다. 2007년 7월25일, 이날이 42회 생일날, 72세의 아버지 배호중씨(제주 영락교회 장로)를 두고 주일마다 손잡고 교회에 나가던 아내와 딸도 두고. "아무일 없으니 염려하지 마라"던 마지막말을 남기고 바로 그날(25일) 탈레반의 총에 맞아 훌훌 털고 세상을 떠났다. 한승주 고려대 총장서리는 2003년 이라크에서의 김선일 사건을 거울 삼아 막을 수 있는 재앙이었다는 것. 탈레반 사건이 혼선을 빚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외교통상부가 해결의 주무부인데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대통령특사를 청와대가 외교부를 제치고 앞장서는 것은 혼선이다. 상대가 테러리스트들의 단체 이고 보면 반(反)아프간정부와의 대결인데 한국의 청와대가 앞장을 서? 다분히 정치적이다. 외교부에도 대통령특사감이 있는데. 더 묘한 것은 아프간정부의 입장이다. 탈레반과 돈으로 해결하면 그 돈이 무기로 변해 다시 아프간정부를 노리고 더욱 답답한 것은 탈레반의 테러행위를 국내외적으로 합법화하라는 압력과 같다. 같은 맥락에서 부시 행정부도 같은 입장. 한국정부를 두둔하자니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입장이 어려워지고 아프간정부의 입장을 두둔하자니 한국의 반미세력이 고개를 들것이 우려되고 더더욱 미국내 반전(反戰) 세력에 불을 돋구는 격이 될 판. 한마디로 빼도 박도 못하는 진퇴양난이다. 게다가 한미 두 나라가 다 대선을 치러야 하는데 부시의 인기는 최하다. 워싱턴 포스트지(紙)와 ABC 여론조사에 의하면 부시에 대한 불신임이 65%로 닉슨 (Richard Nixon)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퇴임하기 4일전의 66%를 1% 남기고 추적 할만큼 곤경에 몰렸다. 게다가 의회와의 관계도 최악. 의회의 소환과 증언에 불응한 백악관 참모들을 "의회 모독죄(Contempt Charges)" 로 하원법사위에서 22:17로 가결시켰다. 크리스챤인 부시가 사면초가로 예수님의 은혜만을 갈구 할 수 밖에.
은혜(恩惠)라는 말에서 恩자는 은혜의 원인을 도출한다. 恩=因+心. 因:까닭, 원인 또는 라틴말로 카우사(causa) 영어로는 코우스(cause; because)로 표시된다. 까닭(因)을 찾는 마음(心)이 은혜의 출발이다. 까닭이 뭐길래? 인간만 사는 나라=口+人=囚; 죄수들인데, 그 인간에 하나님(一)이 공존(因)하니 죄수들이 사는 까닭을 캐는 마음이 곧 은혜의 시작. 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죽이고 죽고 하나? 그것을 캐어보니 이 땅에 하나님이 인간과 공존(共存)한다는 것. 그가 곧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우리 인간 속에 함께 하신다. (한인회보 2005.11.25. '恩' 참조). 하여 은(恩)은 그리스도의 신분을 밝히고 혜(惠)는 "나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맺어 준다. 惠 자는 十(열십 또는 십자가 십) + 曰(말씀왈)+  (나사) + 心(마음심) 으로 나누어진다. 풀어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 하나님 말씀과 나와 내 마음을 "꿰매어 놓았다 (惠)는 것." 이 은혜의 惠자를 바울 사도가 아주 잘 그려낸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 입니다. (갈라디아서 2:20) 영어 표현에 따르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현재 완료형 (I have been crucified). 옛날에 세례 받을 때, 집사, 장로 될때, 목사 안수 받을 때 못 박히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박혀가고 있다는. 못박힌 상처가 믿음 생활을 하면 아무는 것 아니라 계속 아픈 상처로 남아 고통이 이어진다. 아파서 어떻게 살아? 그래서 죽는단다. 나는 아파서 못 견디니까 "죽고" 그 아픈 상처에 그리스도 예수님이 "살아" 내 죄의 대가로 나를 죽인 그 자리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증거" 된다.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지금 증거된다 (But Christ lives in me). 죄의 법 (法)은 죽음으로 끝장을 내고 사랑의 혜 (惠)는 십자가 말씀 (예수 그리스도)으로 나의 죽음을 부활로 바꾸어 놓는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믿음의 "까닭 (恩)"이며 이 까닭이 내게 예수님 사랑 (십자가)로 꽃혀 있는것이 혜(惠)이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것이라. (Grace and truth came through Jesus Christ: 요한복음 1:17).
여기서 은혜의 현주소가 명백해 진다. 은혜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이고 이 관계는 이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2천년 전부터 맺어져 있다 (Grace came through Jesus Christ). 내가 태어나기전부터 예수님을 알았는지는 나를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 밖엔 아는 이가 없다. 하여간 은혜는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하나니 (Christ will be exalted in my body, whether by life or by death).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2:20~21. 은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그리고 분명히 보여주는 사도바울의 은혜관(觀)이다. 이 은혜에 이르려면 딱 한길. 은혜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배우는길이다. "Learn from Me (Jesus Christ),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내 (예수)게 배우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마태복음 11: 29=의역. 사도바울이 자기몸에다 예수님을 생사를 걸고 높히신다는것은 "자신이 낮아진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자기를 알려면 꼭 갖춰야 할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는 명령이시다. 이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들은 사람이 배형규 목사였다.
그는 제주도에서 고등학교 (제주 1고)를 졸업하고 육지로 꿈을 가꾸려 한양대학과 서강대학원을 졸업 일반회사에 취직해서 출세와 명예를 키우던중, "은혜의 목소리" 에 빠져 장로교신학대학원을 거쳐 2001년에 목사안수를 받은 늦동이 목회자. 사랑하는 아내 (36세)와 외딸 (9살)을 남겨두고 "주(主)의 일"하다 홀연히 "은혜의 길"을 졸업한 "은혜의 젊은목자," 그가 깡그리 시신까지 남을 위해 바쳤을 뿐만아니다. 또 한가지. 그의 끝없는 웃음을 만난사람들의 가슴마다 새겨놓았었다. 어떤 어려움도 그의 웃음에는 녹았단다. 아마도 자기에게 총을 겨눈 탈리반 테러리스트에게도 예외없이 미소를 쏟아 줬을게다. 그래서 그 웃을을 죽일려고 열발이나 총알을 쏟아부었을 것 아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배형규의 몸은 탈리반들이 죽였지만 그 몸에 담겼던 그리스도예수님의 웃음 (믿음)은 더욱 큰소리로 웃는다. 그의 웃음은 "사랑과 기쁨"을 뜻한다. 이 사랑과 희락은 성령의 열매중 으뜸이다. (갈라디아서 5:22)    惠의 원뜻은 "인야 (仁也 ): 어질다" 는것. 어진사람의 기본조건이 "온유와 겸손," 곧 예수님의 마음바탕이다. 하여 크리스챤에게서 예수님이 존귀하게 아니 예수님을 맏는 믿음이 증거되는 것인지를 알아내는 증표 (witness)가 "온유와 겸손," 이 마음 바탕은 언제나 미소 (smile)를 뿜어낸다. 이 죽음을 뚫고 십자수(繡)를 놓으며 높은곳에서 웃음을 뿌리는 배형규목사의 "은혜로운 웃음", 부시와 노무현에게는 물론 탈리반과 알케이다에게도 전염됐으면 좋으랴?
아니 한국 기독교인들에겐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전염돼야만 한다. 배형규목사의 웃음이. 이 웃음이 전파되는 한 한국교회에 예수님의 웃음이 끊이질 않을 것이다. 바로 교회들을 향한 예수님의 웃음이 십자가적 아픔과 고난을 이겨낸 (overcome) 혜소 ( 惠笑:은혜로운 기쁨) 였으니까.
내 삶속에 이 웃음이 둥지를 틀었나? 이 대답이 고 (故) 배형규목사의 옷음을 키울것이다. 아주 은혜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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