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벌초'
보스톤코리아  2007-09-25, 00:30:45 
바람이 불어 볼을 스치는 가을이 오면 가슴에 휑한 바람이 일어 시려 옵니다. 그토록 자식에게 희생하셨던 내 어머니를 그리며 울다, 울다가 지쳐 잠이 들면 당신은 언제나 내게 찾아와 꼭 안아주십니다.
"잘 계신가요?
"당신이 계신 하늘나라는 어떻던가요?"
"행복하신가요?"
그리움이 한 움큼씩 쌓여 올려지면 바람 따라 달려갑니다. 그러면 당신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무도 그리우면 눈을 감고 당신과의 한없는 여행을 떠나봅니다. 너무도 그리움인 당신의 품에 안겨 한없이 떠나봅니다.

낳고도 기르지 못한 아들에 대한 당신의 그 한(恨)을 잊을 수가 없어 가슴이 아려 옵니다. 그토록 혼자서 가슴을 쥐어짜며 서러워하셨던 어머니. 당신은 몰래몰래 뒤돌아서서 눈물을 훔치고 계셨지만, 보고도 못 본 척했던 막내딸이었습니다. 그 어느 아들보다도 더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늦은 막내의 행복을 채 누리지도 못하시고 당신은 멀리 떠나셨지요. 그래도 늘 하늘께 감사를 올립니다. 그 늦은 아버지 나이 쉰에, 어머니 나이 마흔셋에 막내딸과 인연으로 만났습니다. 이처럼 귀한 인연이 또 있었겠는지요? 아마도, 당신들은 많이 힘겨우셨을 겁니다. 철없이 보채는 막내딸의 억지에 늙은 부부는 다른 집 자식들보다 열심히 먹이고 입히려 하셨지요.

지금 생각하면 모두가 고마움 뿐입니다. 갚지도 못할 '인연의 빚'입니다. 어머니의 그 지독하도록 깊은 희생이 싫어 제 애들에게는 쌀쌀한 엄마로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아이들에게는 '상처'로 남았을지도 모를..., 하지만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그 아이들이 언제가 이 엄마의 나이가 되었을 때, 제 자식들에게는 쌀쌀하고 냉정한 엄마 대신에 다정다감한 엄마로 있겠지요. 이 모두가 세상사는 일인가 봅니다. 늘 어려서부터 떨어져 살았던 막내딸, 늙은 부모인 당신들에게는 얼마나 가슴 아픈 이별이었을까. 지금 가만히 생각하면 너무도 몰인정한 딸이었습니다. 그리움으로 막내딸 이름을 속으로 부르다 부르다가, 잠이 들었을 늙은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를 생각하면...

한국 땅에서도 떨어져 살다가, 그것도 모자라 또 타국 멀리 미국 땅으로 오고 말았지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수억 만 리의 땅으로 보내고 말았지요. 그렇게 떨어진 이별도 잠깐이려니 싶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막내딸은 미국으로 시집을 가겠다고 선포를 했지요. 그 말에 놀란 당신(아버지)은 그만 쓰러지시고 깊은 병환에 눕게 되셨지요. 미루자는 결혼 날짜를 어머니는 반대를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연세가 높으시니 너는 걱정 말고 그냥 가거라!' 하시며 어머니는 한사코 반대를 하셨지요. 기쁜 결혼식 날 당신은 중환자실에 누워계시고 오빠 없는 설움으로 큰 형부 손을 잡고 신부입장을 하면서 마음 아린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몰인정한 딸이 되어 당신을 중환자실에 놓아두고 또다시 멀고도 먼 미국 땅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사는 일이란 늘 그렇듯, 좋은 남편과의 행복한 기쁨과 그리운 아버지와의 가슴 아픈 이별을 사이에 두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깊은 그리움을 안고 부모님을 찾았을 때, 만남의 기쁨보다는 이별의 슬픔을 먼저 안고 계셨습니다. 보고픔에 찾아온 딸을 보내기 싫어 잡고 또 잡고 놓지 못하시던 내 아버지의 손길을, 차마 잊을 수가 없어 가슴에 파랗게 멍으로 남았습니다. 아버지, 당신이 떠나신지 언 13년이 다 지나도록 가슴에 남은 덩어리는 풀리지 않고 남았습니다. 당신(아버지)이 그리움이 되어 강물처럼 밀려올 때면 콕콕거리며 뾰족한 송곳이 명치끝을 치밀며 달려듭니다.

아버지를 만 5년이나 병 간호를 하시던 어머니는 더욱 쇠잔한 몸으로 정성을 다해 아버지를 모셨습니다. 어머니의 그 강직함과 강인함이 때론 싫었습니다. 나약하고 부드러운 어머니를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 어머니의 강직함에 때로는 불만을 가진 딸이었습니다. 세 아이를 키우며 불혹의 사십에 올라서야 내 어머니의 그 강직함이 나의 삶에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만 5년 그렇게 병시중을 드시면서 단 한 번도 귀찮거나 싫은 표정 없으신 채 잘 받드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동네 어른들의 어머니에 대한 칭찬에 고맙고 감사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6년째에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어쩌면 너무도 서럽고, 쓸쓸하고 외로운 날들이셨을 겁니다. 누워계신 아버지를 보내시고 얼마나 허전하셨을까.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당신(어머니)이 돌아가시기 전 남긴 유언의 말씀 중에는 이 한 가지가 끼어 있었습니다. "나를 딱 5년만 산소를 써 달라고..." 지금 마음 같으면 '화장'을 해달라고 싶은데, 동네 어른들께 남은 자식들을 욕 먹히기 싫으니 부탁의 말씀을 남기신다고 말입니다.  당신이 떠나고 나서 꼭 5년 후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산소'를 다시 손을 보고 '화장'을 해달라고 부탁을 자식들에게 하셨습니다. 5년 정도 친정부모님들의 묘를 모시면 동네 어른들께 '흉 거리는 잡히지 않을 거라고...' 말입니다. 어머니, 당신이 계신 무덤을 찾아 '벌초' 한 번 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이 불 효녀를 용서해 주십시오. 어머니, 당신은 자식들을 동네 어른들께 욕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은 그토록 자주 찾으시며 '아버지의 벌초를 손수 하셨건만...' 돌아가시면서도 자식들의 걱정을 아끼지 않으셨던 어머니! 오늘은 몹시도 당신이 그립습니다. 당신이...,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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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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