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리(개나리)와 메뚜미(메뚜기)의 얘기
보스톤코리아  2007-10-09, 23:21:39 
토요일 아침이면 늦잠자는 아이들이랑 실랑이를 벌인다. "일찍 일찍 준비해야지?" 하고 아이들의 학교 준비를 서둘러 챙긴다. 일주일 내내 학교 공부 하기도 힘든데, 토요일이면 '한국학교'를 가야 하는 아이들의 심정은 어떨까. 때로는 가기 싫은 표정이 얼굴에 가득하다. 좀 쉬고 싶은데 엄마의 잔소리에 쉴 수도 없고 차라리 '한국학교'로 달려가는 편이 나을 것이리라.

딸아이가 초등학교 1~2학년 때부터 한국학교에 다닌 기억이다. 어린 고사리 손가락으로 한국학교에서 돌아오면 잊지 않고 숙제를 하는 모습은 가히 예쁘고 고마웠다. 사실, 아이들 아빠(남편)는 만 6살에 이민을 왔기에 한국말이 많이 서툴렀다. 한국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운 시절이던 1969~70년 이 무렵에 이민을 왔던 삼 남매는 일반 초등학교에서도 동양 사람들은 삼 남매 뿐이었단다. 혹여, 한국말을 잊을까? 어머님은 늘 염려하고 있으셨단다. 하지만, 몇 년 그렇게 학교에 다니고 한국말을 적게 쓰다 보니 점점 한국말을 잊어버리기에 이르렀단다. 또한, 대학에 들어가서는 어머니와 대화 시간도 짧아지니 한국말을 잊어버리는 것은 당연했던 일인지도 모르리라.

20여 년 전, 처음 이 사람과 만났던 기억 중에 잊지 못할 얘기가 있었다. 영어가 서툰 한 여자와 한국말이 서툰 한 남자가 만나 얘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질문을 해온다. "시험(exam)과 수염(mustache)과 수영(swim)이 어떻게 다른가?" 하고 말이다. 그때는 한바탕 웃었던 일이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며 이 사람이 물어왔던 질문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가끔 아이들이 물어오는 한국어로 애써 표현하려 했던 질문들을 보면서 말이다. 하루는 딸아이가 한국학교에서 배워 온 단어 하나를 생각해내며 "아빠, 손가락을 한국말로 써봐요" 한다. 딸아이 앞에서 못 쓴다고 할 수도 없고, 어려서 어머니가 곁에서 한자 한자씩 가르쳐 주었던 기억을 더듬어 하얀 백지 위에 딸아이와 함께 써 놓았다. 딸아이가 또박또박 써놓는 '손가락' 글자를 아빠인 이 사람은 받침을 빠뜨리고 써 놓았다. 우리는 모두 한바탕 웃음으로 깔깔거리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엊그제는 식품점에서 한국 비디오를 하나 빌려다 보았다. ‘눈물과 웃음으로 학교 가는 길’ 자이니치(재일동포)들의 한국학교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작해 놓은 것이었다. 이 비디오를 보면서 내내 눈물을 흘렸다. 재일동포 3세, 4세의 아이들이 일본학교가 아닌 한국학교에 다니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과 함께 살아가는 10살짜리 아이의 한국학교에 대한 열정은 가히 가슴이 메이도록 고마운 일이었다. 어쩌면 미국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겪는 '한글 공부'에 대한 실정과 너무도 비슷해서 그랬을까. 가족 중에 한국말을 잘하는 할아버지 다음의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어린 녀석이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일본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기에 한국말을 하지 못하였다.

취재진들이 집 뜰에서 취재를 하는중 이 녀석은 '메뚜기' 한 마리를 만나게 되었다. 아이들은 '바따'라고 외친다. '바따'가 뭐냐고 묻는 취재진들에게 이 녀석의 대답은 "메뚜미"라고 답을 한다. "메뚜미?"하고 물으니 얼른 대답을 고쳐서 "메뚜기"라고 대답을 한다. 문득, 어릴 적 우리 집 딸아이가 생각났다. 봄이면 길가와 뒤뜰에 노랗게 핀 '개나리'를 보고 좋아했던 딸아이였다. 하루는 길을 지나다 말고 "엄마, '내가리' 봐요." 한다. 그래, '내가리'가 참 예쁘지? 하고 웃음을 터뜨리던 엄마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한국학교에 가서 '개나리'를 배우고 돌아와 '내가리'를 외치는 아이는 진정 고맙고 예뻤다. 이 어린 아이들을 보살피며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고맙고 감사했다. 배우고 익힌 것을, 보고 말하고 표현할 줄 아는 아이가 고마운 날이었다. 일본의 재일동포 4세 아이가 '메뚜미(메뚜기)'를 외쳤던 것처럼, 미국에서 2.5세로 살아가는 딸아이가 '내가리(개나리)'라고 외치는 그 '한국말'은 환한 빛으로 올랐다.

한국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어찌 '한글' 뿐일까. 우리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역사에 대해서도 배우고 있다. 아이들이 아직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Identity)'을 찾아가는 귀한 자리임이 틀림없다. 일본에서든, 미국에서든 우리는 일본인이 될 수 없고 미국인이 될 수 없다. '일본 한국사람'과 '미국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기에 더욱 내 것을 익힐 수 있고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일본 속에서의 작은 한국은, 미국 속에서의 작은 한국은  바로 그 아이들의 정신이고 의식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한글날'(제561돌을 맞는10월 9일)은 세종 대왕이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지어 반포한 날을 기리고자 정한 날이다. 타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조국의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당당하고 멋진 꿈나무로 자라길 소망해 보면서...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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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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