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중간결산 분기점에서
보스톤코리아  2007-11-18, 00:31:46 
11월의 바람은 차갑게 볼을 스치고 옷깃을 여미게 한다. 더울 때는 잊고 지내던 계절에 대한 인식을 살갗에 추운 느낌으로 감지하게 된다. 이른 아침 찬 공기에 코끝이 찡해지고 움츠러드는 몸의 변화를 통해 계절을 느끼며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주변의 생활이 안정되고 모든 일들이 순조로울 때는 평안함에 대한 감사가 적다. 하지만, 주변의 큰 변화를 만나면 당황하고 그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없다. 때로는 무너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리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또한, 그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고 더욱 단단하고 견고한 삶을 쌓아올리는 경우도 보게 된다.
아이들이 커가며 잊고 살던 나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게 되었다. 언제나 늘 젊은 날만 있을 것 같았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사십의 중반에 오른 나 자신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하, 그랬구나! 이제는 어린 나이가 아니구나!" 하며 깊은 생각을 만났다. 아이들이 어려서는 신경쓰이지 않던 것들이 아이들이 커가며 '아이들 엄마의 자리'에 대해 생각을 하는 것이다. 삶이라는 것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깨달으며 가족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곧 사랑임을 알게 된 것이다. 아이들도 이제는 서서히 자기 인생에 대한 꿈을 그려가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어떤 그림으로 그려지고 있을까. 그 그림이 내심 궁금해지는 것은 아마도 이 가을의 계절 탓만은 아닐 게다.
몇 년 전, 건강하고 건장하던 남편이 건강 진단을 받다 몸에 이상이 있다는 나쁜 결과를 만났던 일이 있다. 지금은 계속적인 진료와 치료로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일은 내겐 악몽이었다. 하룻밤이 몇 십 년보다 더 길게 느껴졌던 그날의 그 밤을 잊을 수가 없다. 당장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몇 날 며칠의 일들은 캄캄한 터널을 지나듯 실빛 오라기 하나 보이지 않은 칠흑의 밤이었다. 그 터널을 빠져나오고야 알았다. 아침 햇살이 얼마나 맑고 고운 환한 빛인지 말이다. 그때 처음으로 삶에 대한 깊은 생각을 만났다. 남편이 내게 소중한 사람임을, 아이들이 곁에 있어 남편과 내가 함께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이고 꿈이고 소망인 것을 말이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남편의 사랑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어둠이 절망이지 않은 이유"를 난 처음 경험했던 것이다. "어둠은 희망으로 이어지는 다리"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이 큰일을 겪으면 작은 일에 감각이 무뎌지는 것인지 모르지만 여유로운 삶의 행로를 찾는가 보다. 이제는 삶에 대해서 그리 조급해 하지 않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그저 일어나는 일이라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삶이라고, 세상에는 나쁜 일, 좋은 일이 따로 없다고 말이다. 다만, 그 닥친 일에서 쓰러지는 사람, 넘어지는 사람, 자빠지는 사람,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라고. 삶은 그렇게 시간과 공간 사이에서 흘러가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가정의 큰일을 겪으며 깊은 생각을 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삶에 대한 나의 인생에 대한 '중간 결산'이었다. 한 남자를 사랑한 여자 그리고 한 남편의 아내이고 세 아이의 엄마인 나에 대한 '내 인생의 중간결산 보고'를 내게 정산하고 있었다. 예전처럼 늘 평화롭기만 했으면 지나치고 잃어버렸을 '귀한 시간'이었다. 이 남자(남편)에게 나는 도대체 어떤 여자(아내)였을까? 하얀 종이를 꺼내 놓고 가운데 줄을 긋고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적을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더니 흰 종이 한 바닥을 다 채우고도 모자랐다. 한참을 써내려가다 멈추고 깊은 묵상으로 나 자신을 만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부족한 것 투성인 나를 들여다보며, 이 남자(남편)에게는 썩 괜찮은 여자(아내)로 점수가 더 높았다. "그래, 이 남자에게 딱 어울리는 이만큼의 여자가 또 어디 있담!" 이렇게 나 자신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며 더욱 씩씩하게 지냈던 중요한 시간이었다. '내 인생의 중간 결산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나 자신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헌데, 서로 다른 환경과 가정에서 자라 한 가족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는 일 자체가 무리가 아닐까. 몇 년을 지나고서야 조금은 서로의 성격과 성향을 알아 이해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일 것이다. 그것이 꼭 가정이든, 사회이든 그 어떤 관계에서도 같은 일일 테니 말이다. 가끔은 이렇듯 11월의 찬바람을 맞으며 한 해를 마무리 하는 12월이 다가옴을 느낀다. 일 년을 두고도 연말 결산이 있는 것처럼, 인생의 삶에서도 중간 결산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만나고 나눌 수 있다면 귀한 삶의 여정일 것이다. 서로의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워주고 감싸주고 나눈다면 그 어떤 찬바람이 불어올지라도 든든하지 않겠는가.
그 어떤 병이라도 보이지 않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병은 치료할 수 있다. 우리의 삶에서도 부부간의 문제나 부모와 자녀 간의 문제 그리고 고부간의 문제 등 가족 간의 문제를 털어놓지 않고 속으로 끌어안고 있으면 안으로 곪고 곪아 나중에는 곪아 터져 고름이 흐르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가족이나 그 어떤 관계에서도 서로 간의 대화가 제일 중요하다. 부부라 할지라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그 사랑을 다 알 리가 없다. 마음으로나 몸으로나 표현하는 '그 사랑'으로 정은 더 두터워지는 일일 테니 말이다. 어찌 부부만 그럴까. 자녀도 마찬가지이다. 이 2007년도가 다 가기 전에 삶에 대한, 인생의 중간 결산의 분기점에서 "인생에 대한 중간결산 보고서"를 하나씩 작성해 봄은 어떨까.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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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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