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을 가릴 줄 아는 지혜
보스톤코리아  2008-03-23, 23:13:12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생각지 못한 일에 직면하게 된다. 그 맞닥뜨린 일이 나 자신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몫도 있거니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버거운 일도 만나게 된다. 사람 관계도 그렇다. 곁에 있는 사람으로 때로는 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일도 있지 않던가. 사람살이에서 사람을 가려가며 사귈 수는 없는 일이지만, 서로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이면 편안한 관계가 되리라는 생각이다. 내 사정을 입으로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의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좋을 것이다.

서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쌓이고 쌓여 막히고 만다. 나중에는 그 답답함으로 인해 본인이나 상대에게 얘기치 못한 상처로 남게 된다. 가끔 서로의 마음을 뚫어줄 수 있는 대화가 필요하며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특별히 이민 사회에서의 관계는 더욱 그렇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서로 알기에는 좁은 공간에서의 나눔이 부족한 일일 게다. 또한, 같은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생활의 여건이 그리 많지 않은 탓도 있으리라. 고작 만나는 곳이 한인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동체 안에서의 정해진 생활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서로 어른이 되어 만난 친구들이 얼마만큼 가까운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서로 이해타산을 따지게 되고 체면에 대한 부담감을 놓지 못하고 이루어지는 그 관계를 생각해 보자. 서로 얼마만큼 그 상대방에 대해서 알 수 있으며 나를 보여줄 수 있을까. 또, 안다 한들 특별히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설령, 마음에 들지 않아 조금 뜸하게 지내고 싶은 이도 있지만, 이 좁은 바닥의 한인사회에서 뭘 어쩔까. 거기가 여기고 여기가 거긴 것을 말이다.

한국에 방문하며 한두 번 정도 찜질방에 친정 언니 따라 가본 일이 있다. 처음 가는 곳이라 어색하고 편치않건만 다른 이들은 너무도 익숙해져 자연스런 모습이다. 촌 사람이 어디 따로 있을까. 이렇게 어리버리 한 모습이 '촌 사람'일 게다. 모두가 낯설고 한 20여 년을 목욕탕 출입이 없었던 터라, 모두가 어설프고 차림새도 민망스러울 만큼 나 자신이 창피한 모습이었다. 열이 확확 오르는 각 방의 이름도 다양해 외우기도 어렵다. 그 뜨거운 불가마에 들어갔다 나와 냉탕에 첨벙 뛰어들어 간다. 참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불가마 속 뜨거움에 익숙하지 않아 뛰쳐나오던 내 모습에 그만 웃음이 났다. 뜨거운지 차가운지도 모르고 뛰어들던 내 모습에 말이다.

이제는 삶에서 기다리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옛 속담에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어라"고 하는 옛 선조의 속담이 어찌 그리도 지혜로운 말인지 마음에 담고 가끔 꺼내어 본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와 일어서서 나와야 할 자리의 구분이 정확하지 않으면 곁에 있는 여러 사람에게 때로는 힘겨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것은 생활에서 얻고 경험에서 깨달아지는 지혜일 것이다. 살다 보면 뜨거워서 델 만한 곳도 있고 차가워서 얼 만한 곳도 있는 것이다. 누구의 의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 물불을 가릴 줄 알고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지혜롭게 선택하고 결정해야 함이 중요하리란 생각이다.

최고의 정상을 오르고자 많은 시간과 온 마음과 몸의 심혈을 기울여 자신이 원하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가 물불을 가리지 못해 무너지는 일을 보지 않았던가. 엘리엇 스피처 뉴욕 주지사의 성추문을 가까이에서 우리가 모두 보지 않았던가. 그뿐인가. 신임 뉴욕 주지사, 후임 데이비드 패터슨 주지사도 취임 직후 자신의 '불륜 과거'를 고백해 미국 사회에 파문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꼭 정치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또한, 정해진 사람들이 있는 것은 더욱이 아니기에 자신의 자리를 한 번씩 돌아보고 일어난 자리를 정리 정돈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혹여, 어느 자리에서나 오해받을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행동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렵사리 곁에서 조언해 주는 사람에게 오히려 바가지를 씌우려는 이 무지하고 몰염치한 행동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한국 속담에는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옛 속담이 있긴 하지만, 내 떡 먼저 잘 챙겨야 상하지 않는다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부려야 할 욕심을 넘어 물불을 가리지 못하고 달려드는 것은 '허욕이며 도둑 심보는 아닐까' 싶다. 내가 누릴 만큼의 것을 누릴 수 있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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