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서
보스톤코리아  2008-07-21, 18:23:22 
요 며칠 어찌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지 덩치 큰 녀석 둘이 부엌의 냉장고 문을 여닫고 집 위 아래층을 오가며 뒹구는 모습이 엄마의 눈에 거슬린 모양이다. 온 가족이 먹는 것을 좋아하는 터라 덩치들은 크고 움직이기 싫어하니 어찌 살이 찌지 않을까. 딸아이는 졸업식을 마치고 한국 방문 후 5주를 보내다 그제야 집에 돌아왔다. 지난해 미국에서 함께 지내던 이종 사촌이 한국에 돌아가 6월에 대학원 합격 통지서를 받아 딸아이와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딸아이는 9월이면 대학 입학을 하는데 아무래도 8월 중순경에는 학교의 기숙사에 들어가야 하는가 싶다. 입학이 코앞에 다가오니 학교에 필요한 준비와 함께 설렘과 두려움도 있는 눈치다.

요 며칠 무더위로 낮에는 더우니 이른 아침에는 혼자 동네를 1시간여 걷고 저녁 시간에는 동네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했다. 어제는 이른 아침에 우리 동네를 돌아 옆 동네까지 걷고 돌아오니 1시간 20여 분이 걸렸다. 몸은 더웠지만, 마음은 자연과 호흡하면서 상쾌해서 하루가 즐거웠다. 운동 삼아 걷는 이들보다 산행하는 이들은 더욱 알겠지만 차라리 언덕을 오르는 일은 쉬운지 모른다. 오른 산을 되돌아 내려오는 하산이 더욱 어려운 법이리라. 오를 때의 펄펄한 기운도 삭아지고 가파른 산길을 내려오는 일은 장난이 아니다. 온 힘을 무릎의 중심에 실어야 하기에 무릎이 떨리고 식은땀마저 흐르는 것이다. 걷는 일이야 평지를 걸으니 별 어려움은 없지만 그래도 야트막한 언덕을 오를 때는 깊은 생각을 만나기도 한다.

몇 년 전, 짝꿍(남편)이 건강 검진을 하다가 느닷없는 검사 결과에 놀란 일이 있었다. 그 놀랐던 가슴은 지금의 감사를 더 깊이 만나게 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임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염려와 걱정 없이 지냈더라면 잊고 지냈을 작은 일상이 내게는 특별한 일상이 되어 큰 기쁨과 감사의 시간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오르막길에서는 별 힘든 줄 몰랐던 시간이 내리막길에서 왜 그리 길고도 험하고 힘들던지 말이다. 지금 생각하니 그 어려운 고비를 참 잘 지내왔구나 싶다. 평범한 삶이란 그저 마음의 욕심을 내려놓고 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저 열심히 욕심부리지 않고 살기만 하면 평범한 삶의 행복은 저절로 오는 것인 줄 알고 살았었다.

나중에야 깨달은 일이지만 '평범한 삶'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어릴 적 친정은 유교 집안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쉰둥이 막내딸을 무척이나 예뻐해 주셨지만, 그 외의 다른 사람에게나 일에는 고지직하시고 엄하신 부분도 많았다. 어릴 적 유년의 기억중에는 성격이 강직했던 어머니가 아버지의 큰 음성에는 가만히 있으셨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아버지의 조용하신 성품이 어머니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강직했던 성격도, 아버지의 화난 모습에 순종할 수 있었던 어머니의 모습도 모두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일일 게다. 내 어릴 적 유년의 뜰은 평범한 가정에서 특별하지 않았지만, 쉰에 얻은 사랑스러운 쉰둥이는 특별한 막내로 자랐던 기억이다.

어른이 되어서야 '평범한 삶'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어렴풋이 엿볼 수 있었다. 큰언니의 딸(조카) 둘의 결혼 생활을 지켜보면서 이모보다 어린 조카들의 가정 생활을 보고 '평범한 삶'에 대해 깊은 생각을 했었다. 큰 조카가 이혼하기 전까지는 '이혼'은 어느 한 쪽의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의 성격적인 문제라고만 치부하고 살았다. 또한, 둘째 조카가 남편(조카사위)을 잃는 일을 보고 내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어릴 적 특별히 어려움을 겪은 일이 없었던 터라 '평범'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냈었다. 그리고 몇 년 전 갑작스럽게 내게 닥친 남편의 건강에 대한 검사 결과는 내 평생에서 처음으로 맞은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평범한 삶'은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그 몫은 내 몫이 아닌 神의 몫임을 말이다.

오르는 일은 어찌 보면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리막길에서 만나는 다급한 일들은 다리를 휘청거리게도 하고 위험을 초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 여정은 이처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사이에서 하루를 맞고 보내며 산다. 오르막길만 있으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혹여, 살면서 오르다가 지쳐 내리막길에서 비바람과 폭풍우를 만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삶이 평안하고 편안한 일상에서 준비하지 못한 마음에는 더 큰 폭풍이 휘몰아친다. 특별하지 않은 작은 일상에서 미리 준비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견뎌낼 힘이 생긴다. 삶에서 만나는 어려움이나 고통은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만나 풀어나가는 숙제이다. 다만, 예습을 얼마만큼 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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