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79] 미안한 마음 /신 영
보스톤코리아  2008-12-19, 17:50:05 
벽에 걸린 달력의 마지막 장 12월을 만나면 언제나처럼 한해를 돌아보게 한다. 새해를 맞으며 다짐했던 새로운 소망과 꿈이 가득한 계획표에 진정 얼마나 실천하며 살았는가, 하고 묻는 것이다. 삶이란, 자신이 세운 계획표대로 잘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가는 나이가 되었다. 때로는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세상을 탓하기도 하고 그 세상에 따르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기도 하면서 또 한해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가만히 한해를 돌아보면 후회보다는 감사의 한해였음을 고백하는 날이다.



요즘 시부모님께서 막내 아들네 집에 다니러 오셨다. 이제는 고희(古稀)를 넘기신 어른이시니 예전에 비해 몸과 마음이 많이 연로해 지셨다. 언제나 곁에서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어머님이 감사하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하다. 늘 막내 며느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으시다.

"얘, 나는 더 늙어도 치매만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나도 나지만…. "

"자식들에게 힘들게 하지 말아야 할 텐데…. " 하신다.

어찌, 우리 어머님의 마음 뿐일까. 연로하신 모든 어른들의 소망이고 기도 제목일 것이다. 이 세상에 자식을 힘겹게 하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어찌 내 마음 먹은대로 건강이나 마음이 움직여 질까.



엊그제는 동네 친구와 오랜만에 점심을 함께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 친구에게도 연로하신 시어머님이 계시기에 노인의 얘기를 주고받는 편이다. 얼마 전 같은 교회에 다니시는 어른께서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으시고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전문적인 재활치료 병원에서 요양 중이시다. 동네 친구와 함께 그 어른께 병문안을 가기로 하였다. 바쁘게 살아가는 미국 생활이 그렇듯이 누군가 병환으로 병원에 계서도 병원을 찾는 일은 마음처럼 쉽게 정해지지 않는다. 찾아뵈어야지, 하고 마음을 정하면 꼭 다른 일이 또 생겨 미루게 되는 날이 태반이다.



친구와 함께 들어선 병실에는 환한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와 눈이 부셨다. 창문 곁에는 고운 화분이 여럿 놓여져 있었고 환자복을 입은 어른(여자 권사님)은 편안한 안락의자에 앉아 편히 쉬고 계셨다. 그리고 그 곁에는 남편인 어른(남자 권사님)이 곁에 앉아 계셨다.

"어서와요."

하며 반갑게 맞아주시는 바깥 권사님! 아내를 병간호하시는 연로하신 어른을 뵈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창가의 햇살에 비춰 환하게 웃던 환자복을 입은 권사님은 예전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도 치매기가 가끔 있으셨다는데 지금은 뇌수술 후라 더욱 악화된 상태라고 하신다.

"해맑게 웃으며 손을 잡아주시는 모습은 아이처럼 천진한 모습이다"

간호원이 들어와 환자 권사님께 묻는다.

"누군지 알아보겠느냐고?"

"음, 내 친구!" 하신다.

바깥 권사님께서는 내심 아내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시고 계신다.



"정말, 미안한 마음이에요!"

"이 사람과 50여 년을 보냈지만…. "

말을 잇지 못하시며 연신 아내를 바라보신다.

"따뜻한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살았어요"

사실, 옛날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흔히 그랬던 것처럼 아내에게 편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저렇게 앉아 있는 모습만 바라보면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저리다고…. "

"병실에 홀로 두고 가려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되돌아 와 앉는다고…. "

참으로 아름다운 고백이었다.

팔순을 넘기신 어른이 아내의 깊은 사랑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시간이 힘겹고 긴 어려운 시간인지….

갑자기 친정 부모님이 스쳐지나 갔다.

뇌출혈(중풍)로 쓰러져 7시간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석달을 지내시다 재활 병동에 계셨던 아버지. 그리고 집으로 옮기신 후 만 5년을 누워계셨던 친정아버지를 정성으로 간호하셨던 친정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래, 50여 년을 마주하며 살아 온 부부라는 관계를 떠올렸다. 자식이 저렇듯 애틋한 마음으로 부모님을 간호할 수 있을까. 부부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함께 살면서 기쁘고 슬프고 행복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모아져 저토록 진한 정이 솟아 올랐을 것이다.

"정말, 이 사람에게 미안해요!"

"제대로 따뜻하게 한 번 대해주지 못해서…. "

그 따뜻한 바깥 권사님의 정성과 사랑이 재활치료에 더욱 큰 효과를 높여주리란 생각이다.

12월을 맞으며 한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깊은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 이 두 분의 권사님을 통해 부부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감동의 사랑을 보았다. '미안한 마음'은 그 어떤 마음보다 더 깊은 곳에서의 넘치는 사랑의 솟구침이다. 병간호하시는 바깥 권사님과 병환으로 계신 아내 권사님의 빠른 쾌유를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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