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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한 컬럼 [9] : 일본 다시보기-사가현 II
보스톤코리아  2009-03-16, 16:36:46   
우리나라 고인돌이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전세계 고인돌의 약 40%인 3만여 기의 각종 고인돌이 한반도에 몰려 있다.
전라남도에서만 2만여기가 확인되고 있다.

고인돌에 관한 한 한국이 종주국이다. 고인돌이라는 이름은 큰 돌을 작은 돌이 고이고 있다고 해서 부쳐진 이름이다. 고조선 시대와 BC 4-5 세기 때의 무덤 양식이다. 역사학자들은 고인돌이 있는 곳에는 선사 시대에 강력한 부족국가가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고 한다.

20톤에서 100톤이 넘는 바위를 들어 올리려면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하는데, 수많은 사람을 동원하려면 인적 자원이 많은 큰 부족국가에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고인돌 무덤에서는 돌칼, 청동기, 곡옥 등 선사시대의 상류층 상징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한반도에는 고조선 이전의 선사시대에 꽤 큰 부족국가가 존재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한반도와 가까운 일본의 규슈에서는 2-3톤 정도의 작은 돌로 만들어진 고인돌이 사가현을 중심으로 나가사키, 후쿠오카, 가고시마 현에서 발견되고 있다.
전부 합쳐서 600여기에 불과 하지만 한반도에서 가까운 규슈에 국한된 것으로 미루어 한반도에서 전래된 문화로 생각하고 있다.

일본의 규슈는 2천년 훨씬 전부터 한반도 문화의 수혜를 받고 있었다. 그 이후라고 해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일본 국민 신앙의 근간인 신사에서 봉제하고 있는 봉제신(神)의 50% 이상이 한반도 신을 더 많이 모시고 있다. 800여 곳의 신사에는 입구에 한반도 토속 신앙의 상징인 장승까지 세워 놓고 있다. 백제에서 온 도래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곳에서는 더 많은 신사에 장승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예가 사가현이다.
신사에 장승이 서 있는 곳은 사가현이 240곳이나 되고, 마야자키현에 117곳, 와카야마현에 119곳, 쿄토, 나라, 오사카를 중심으로 167곳이나 된다. 우리나라도 전역에서 장승을 볼 수 있지만 특히 백제의 고토(古土)인 전라남북도와 충청남도에 70%의 장승이 몰려 있다.
이상의 사실은 백제 사람들을 주축으로 하는 한반도 도래인들이 일본의 토속 신앙 형성과 장승문화 전래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백제 유민들이 옛날 고향에서 하던 것처럼 병마를 막아주고 마을을 지켜주던 장승을 당연히 일본에서도 세웠을 것이다.

이상한 것은 일본의 장승은 한국처럼 천하 대장군과 지하 여장군이 함께 서 있는 것이 아니고 천하 대장군만 외롭게 서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우리 귀에 익숙한 간무 천황(794)의 칙령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아키히토 일본 천황이 한일 월드컵 행사를 치르면서 간무 천황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실토한 바로 그 간무 천황이다.
무령왕의 아들 순태(純陀)태자가 간무 천황의 외증조부가 된다. 순태 태자의 손녀 고야신립(高野新笠)이 광인(光仁)천황과 결혼하여 간무 천황이 태어난 것이다. 당시 일본 귀족 사회의 풍습은 아이를 낳으면 외갓집에 보내져 길러지도록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는데 간무 천황도 백제인 외갓집에서 성장하면서 백제인들의 토속 신앙인 장승을 많이 보아 왔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왕이 되자 마자 칙령을 내려 지하 여장군을 빼고 천하 대장군만으로 왕성을 지키는 수호신을 삼은 것이다.

장승의 기능이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을 간무 천황이 간과한 것이다. 남녀 장승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모른 것이다. 장승에 얽힌 한국의 고전 “변강쇠전”에 천하의 잡놈 변강쇠가 나무 해오라고 시키니까 동구 밖에 서 있는 장승을 뽑아다가 화목재로 불살라 버렸다.
원통한 장승들이 서울 노량진 선창에 있는 조선 팔도의 두목 장승을 찾아가 억울한 사정을 고하자 이에 성난 두목 장승이 사발 통문을 팔도에 돌려 새남터에서 변강쇠 놈을 어떻게 응징할 것인가를 놓고 팔도 장승 회의를 열었다. 결론은 조선 땅에 있는 8백 가지 병으로 변강쇠를 병도배를 시켜 즉사시켜 버리는 것이었다. 못된 놈을 징계 해서 백성들이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장승의 임무였다.

사실 옛날에는 세속인들의 삶이 남녀 장승과 연관된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장승이 오래 되어 썩게 되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장승을 사람을 장사 지내는 것처럼 매장을 하는 장승제를 지냈던 것이다.
장승의 기능은 ①병마와 외적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고 ②마을의 경계를 표시하고 ③길손에게는 이정표의 역할도 했었다.
경국대전에 이르기를 조선은 10리 지경마다 장승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④소원 성취의 기능이 있었다. 아들 낳고 싶은 여인은 천하 대장군의 코를 베어 달여 먹였으며 그 효험을 얻어 아들을 낳은 여인은 “장승첩”이라고 불렸다. 또 젖이 나오지 않는 여인은 여장군 장승의 가슴에 자신의 가슴을 접촉하여 효험을 얻으면 장승 유모(乳母)라고 불렀다. 연인들이 남의 이목을 피해 몰래 만나던 장소도 장승이 서 있는 장승배기였고 노처녀가 신랑을 점지해달라고 기구했던 곳도 여기였다. 근래에는 자손들의 입신 출세를 소원 했는가 하면, 농부들이 농사신 고시에게 바치는 고시래 떡도 받드는 곳이 이곳이었다. 장승배기를 지나갈 때는 의례 돌 한 개를 던져 놓고 지나가야 동티를 면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외적이 침입 했을 때 팔매질할 돌무더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한국의 장승은 토속 신앙의 범주를 넘어서 세속인들의 생활을 관리하는 삶의 근본이었다. 남자 혼자만의 힘으로 삶을 꾸려 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만약 간무 천황이 지금 다시 칙령을 내린다면 남녀 장승을 함께 세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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