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흥망과 발해국의 태조 대조영 17.
보스톤코리아  2009-03-23, 17:43:05 
고구려는 서기 668년 10월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수도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705년의 역사를 마감하게 된다. 고구려의 영토 5부, 176성과 69만호가 모두 당나라에 흡수되었다.

패전의 국왕인 고구려 제 28대 보장왕과 태자, 왕자, 귀족, 장성들이 모두 포로가 되어 당나라로 끌려갔다. 이와 함께 3만 여명의 양민도 포로가 되어 당나라로 끌려가 장강과 회수 이남의 지역인 산남 경서 등지에 배치되어 농사일에 종사케 했다.

한집안이 망해도 여러 말이 많은데 나라가 망했는데 어찌 말이 없었겠는가? 신당서는 고구려비기(高句麗秘記)라는 책을 인용하여 고구려의 멸망을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다.

고구려 미급 900년 당유 8십 대장군 멸지 고구랴 자 한시 금 9백년 이적 연 8십이 (不及九百年當有八十大將滅之高句麗自漢有國今九百年) 고구려는 9백 년이 채 못되어 80세난 대장군에 의하여 멸망 될 것이다. 고구려는 한나라 때부터 있던 나라이다. 지금에 9백 년이 되었다.

평양성을 함락시킨 당나라 이적장군의 나이가 당시 80세였다는 것이다. 이적장군은 고구려가 멸망한 다음해인 서기 668년에 신병으로 사망했다. 고구려 비기가 지금에 전하지 않아 어떤 종류의 책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이성계가 이씨 조선을 창건할 당시에 나돌았다는 정감록(鄭鑑錄)과 같은 참서가 아니었던가 여겨진다.

80세난 당나라 이적장군이 평양성을 함락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고구려가 9백년이 되었다는 것은 부여의 역사를 합하면 모를까. 당치도 않은 소리이다. 그 같은 참서(讖書)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당고종은 고구려의 옛 영토를 9주, 42군, 100현으로 당나라의 제도에 따라 행정구역을 정하고 추장과 호족 등 공이 많은 자를 택하여 도독, 자사(刺史)또는 현령에 임명하고 중국인 참리와 함께 통치하게 하였다. 그리고 평양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하고 좌요위 대장군 설인귀(薛仁貴)를 도독으로 삼아 2만명의 병력을 가지고 총리케 하였다.

마치 1932년 일본 제국에 옛 땅인 만주를 점령하고 괴뢰정부를 세운 것 같은 통치형태 이었다. 나라가 망해서 갈 곳 없는 백성들을 어떻게 할 것 인가. 고구려의 막리지 연개소문에게는 남생등 세 아들과 연정토라는 동생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연정토가 서기 666년 형 연개소문이 죽은 다음 남생, 남선, 남산등 세 아들 사이에 막리지의 계승을 놓고 큰 싸움이 벌어졌다. 연정토는 남생편에 섰다가 형세가 불리하게 되자 신라로 도망했다.

삼국사기의 신라 문무왕편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의 귀신(貴臣) 연정토가 12성, 763호, 3천 5백 43명을 이끌고 와서 신라에 항복 하였으므로 문무왕은 연정토와 그를 수행한 24명의 관직들에게 의복과 양식을 내리고 집을 주어 도성과 그 밖에 주부에 살게 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귀족의 한 사람인 태대형 고연무(高延武)가 668년에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말갈 병을 무찔렀다. 고구려 부흥운동 크고 작은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부흥 운동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추장 검모잠(劒牟岑)의 반란 사건이다.

그런데 검모잠의 반란에 대한 중국측 사료인 “신당서”나 “통전”의 내용이 서로 다르며 또한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신당서”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하면서도 문무왕 시대의 사실과는 엄청난 모순을 보여 이해하기가 어렵게 되어있다.

이 부흥운동은 민족이 다르며 문화가 판이 한 당나라의 지배를 거부한 사건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좀 얘기가 길어진 것 같지만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하여 아무래도 이 문제를 집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구당서 에는 검모잠의 반란에 대한 말이 없다. 검모잠의 반란에 대한 글은 신당서와 통전에만 실려있다. 그리고 김부식의 삼국사기 에서는 신당서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 말할 필요는 없고, 신라 문무왕 편에 언급되어 있는 내용은 뒤에서 다시 말하기로 하고, 신당서의 기록부터 먼저 찾아보기로 하자,

그에 의하면 총장 2년 (669) ”… 대장 감모잠 솔중반 인방외손 안수위왕… 순살감모잠 주신라… 大長劒牟岑率衆叛立藏外孫安舜爲王… 舜刹劒牟岑走新羅 대방감모잠이 군사를 모아가지고 반란을 일으켜 보장왕의 외손자 안순을 왕으로 옹립했다…. 안순은 감모잠을 살해 안수 하고 신라로 달아났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요동주도독 고간이 안시성 에서 반란병을 진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통전(通典)의 기록을 보면 “함형(咸亨) 원년 (670) 4월에 고구려의 추장 검모잠(劒牟岑)라는 자가 유민들을 인솔, 보장왕의 외손자 안순(安蕣)을 왕으로 삼고 반란을 일으켰다. 당고종은 자위대장군 고간을 보내 그들을 토벌하게 하였다.

그 후로 고구려의 남은 무리들은 스스로 보전하기가 어렵게 되자 모두 헤어져서 신라와 말갈에 합쳐졌다. 옛 고구려의 영토는 모두 말갈에 편입되고 고구려의 왕계는 결국 끝나고 말았다.”라고 하였다. 통전의 기록은 신당서의 그것과 별차이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다만 감조잠을 검모잠(劒牟岑)이라 한 것과 또 안순이 검모잠을 살해하고 신라로 도망하였다는 말이 없다는 것, 그리고 예 고구려의 영토가 그 후 모두 말갈에 합쳐졌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 특이 하다고 하겠다.

<다음호에 이어서>

백린(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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