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과 음악가(3)
보스톤코리아  2010-05-03, 11:33:57 
보스톤(위도42도)은 평양보다 더 위쪽에 있고 대서양을 옆으로 끼고 있어 동해 강원도처럼 눈이 오면 폭설로 옵니다. 올해는 눈이 적고 봄이 빨리 찾아왔다지만, 4월에야 봄꽃 크로아티아, 히아신스, 튜울립들이 뾰쪽뾰쪽 올라오더군요.

보스톤에선 지난 4월5일 아시안 아메리칸의 당뇨병을 집중연구하는 Asian American Diabetes Initiative(AADI)의 연구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 6회 A spoonful of Ginger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행사는 많은 쉐프와 레스토랑의 후원으로 보스톤에서 제일가는 Food Tasting 이벤트로 꼽힌답니다.

4월7일엔 올해 뉴욕양키스로 옮긴 박찬호선수가 보스톤 레드삭스 홈구장에서 첫승을 기록했고, 타이거 우즈는 6개월 공백 후 4월8일 마스터스에 출전하여 최경주와 공동 4위를, 4월19일엔 어렵기로 소문난 전설적인 코스를 뛰는 보스톤마라톤에서 케냐의 체루이요트가 2시간5분대의 대회 신기록을 작성합니다. 참, 마라톤은 지형,기온,습도 및 바람 등의 여건이 대회마다 다르기 때문에 신기록(New Record)이라는 말보다는 최고기록(The Best Record)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더군요. 대부분의 경기나 게임이 우승, 금메달에 목숨 걸고, 심지어 포커는 2등이 제일 손해보지만, 적어도 마라톤은 순위나 서열보다 끝까지 완주한 것만으로도 대단하게 쳐줍니다. 이곳 조슬린당뇨센터에서는 올해도 당뇨병환자와 가족으로 구성된 마라톤 팀을 제 114회 보스톤마라톤에 출전시켜 이벤트를 만들었습니다. 마라톤은 초반에 앞 바람을 맞으며 선두로 나서다 보면 자칫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므로 페이스메이커가 이 일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모차르트는 어려서부터 그 시대 음악의 페이스메이커였습니다. 알려진대로 비즈니스에 밝았던 모차르트 아버지는 천재적 음악재능을 나타낸 모차르트(6세)를 데리고 유럽 음악 여행을 합니다. ‘천재소년’이란 갈채속에 소년 모차르트의 이름은 전 유럽에 퍼졌고, 어린시절부터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각지의 음악을 접한 경험은 모차르트 음악적 성장에 큰 보탬이 됩니다.

궁중악장의 테너 가수인 베토벤 아버지 역시 아들을 신동으로 키워 큰 돈을 벌 요량으로 유럽순회를 하지만 이미 어린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경험한 유럽인들의 관심을 끌진 못하지요. 베토벤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은 모차르트가 죽은(1791) 이듬해 빈으로 입성한 후부터 발휘됩니다. 1792년 11월 프랑스와 전쟁이 일어나리란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베토벤은 독일 본을 떠나 빈으로 향합니다. 베토벤은 이후 몇 년 간 모차르트풍 취향의 작품을 쓰고 대가의 작품을 공부하면서 자신이 당시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의 뒤를 잇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무렵(26세)부터 베토벤은 난청이 있었고, 주치의겸 친구인 멜젤이 메트로놈(음악의 템포를 올바르게 나타내는 기계)을 개발1)해 귀가 먼 베토벤이 처음 사용한 것은 음악사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멜젤은 보청기도 개량해 베토벤에게 주지만, 귀 대신 영혼으로 들으며 작곡한다며 거절했다더군요.

베토벤이 숨지기 일주 전 슈베르트가 병상의 악성을 방문하고 장례행렬에도 촛불을 들고 맨 앞에서 따라갑니다. 평생 거인 베토벤의 그늘에 가리워져 세상이 자기를 몰라 줬지만 “나를 그냥 내버려 둬. 나는 이대로가 좋아. 나는 그저 작곡하기 위해서만 세상에 태어났으닌까….” 피아노조차 없이 친구 집 지붕 아래 다락방에서 기타를 뜯으며 작곡한 슈베르트는 이렇게 말하며 샘솟는 악상을 오선지가 없을 땐 일기장에, 편지봉투에 옮겨 적었다고 합니다. 맥주를 무척 좋아하는(별명이 맥주통), 겸손하고 유순한 슈베르트의 재질을 인정하고 아껴주는 펜클럽 ‘슈베르티아데’는 슈베르트 음악을 세상에 알린다는 일념으로 매일 만나 슈베르트의 연주를 돕습니다. 또한 이들은 슈베르트가 베토벤 이후 독일과 유럽음악을 이끌어 갈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길 바랬지만, 베토벤 서거 후 18개월 만에 가곡의 왕 슈베르트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습니다. “내가 죽거든 베토벤 옆에 묻어 달라2)”

1825년 살리에리3)가 사망한 이후 1826년 ‘자유의 사수’ 폰 베버가 세상을 떠나고, 1827년 베토벤이, 1828년에는 슈베르트가 눈을 감으면서 음악의 무대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독일로 옮겨지고 낭만주의 음악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이 당시 이슈는 베토벤과 슈베르트 뒤를 이을 음악가였고 이때 멘델스존, 슈만, 쇼팽 등이 있었으나 페이스메이커역할을 하는 스타급은 아니었나 봅니다. 이런 가운데 유럽 음악계 페이스메이커로 나타난 이들이 바로 다음달 5월7일에 태어난 브람스와 5월22일 태어난 바그너입니다. 또한 5월엔 해남병원의 새로운 페이스메이커 소아과 이원희과장, 신경과 윤창효과장과 레지던트 고일웅, 김영일선생이 근무를 시작하고 이곳 보스톤에선 5월1일, 의사,간호사,약사등으로 구성된 롱우드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아시안 가정상담소(ATASK)기금모금을 위한 자선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군요. 보스톤과 음악가 4는 이들의 이야기 입니다.

1) 1812년 네델란드의 빈켈이 발명하고, 다시 1816년 독일의 멜첼이 개량해서 특허를 받았다.
2) 비엔나의 중앙묘역(Central Cemetary)에는 메트로놈(Metronome)모양의 베토벤의 묘와 그 옆에 슈베르트의 묘가 있다.
3)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 모차르트의 라이벌이라고까지 일컬어졌던 살리에리는 베토벤에게 오페라와 성악곡의 작곡법을 가르쳤다. 아울러 빈의 궁정악장으로서 소년 소프라노를 뽑기위해 슈베르트의 오디션을 맡았다. 슈베르트는 초기작품의 악보에다 ‘살리에리 선생의 제자’ 라고 스스로 쓰고 있다.

해남종합병원 내과(조슬린당뇨센터, 하버드의대 연수 중) 양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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