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 마운트 라파예트
보스톤코리아  2010-11-29, 14:35:26 
"10월 26일, Mt. Lafayette, 아이젠 준비할 것". 산악회 게시판에 올라온 정기산행공지는 멋들어진 설산의 사진이 곁들여 있었다. 사진 때문이었으리라. 난 원래 계획되어 있던 프랑스어 수업을 취소하고 산행신청을 했다. 멋진 설산의 사진이 좀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겨울이라 부르기엔 좀 이른 감이 있다고 느끼면서도, 한편 처음으로 겨울 산행을 해보는구나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산행날 아침, 차가 없는 나는 지난번처럼 다른 회원님들의 차를 얻어 타고 등산로 입구까지 갈 수 있었다. 이번이 두 번째 산행인지라 아직 아는 분들보다 새로이 뵙는 분들이 더 많지만, 회원 모두들 반갑게 맞아주시기 때문에 사람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 대한 어색함은 금세 사라졌다. 등산로 입구에서 회장님으로부터 마운트 라파예트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준비 운동을 하고는 A-1 조에 속해있던 난 제일 먼저 등산을 시작했다.

지난 번 등산엔 온통 바위길이라서 조금 실망했었는데, 마운트 라파예트는 내가 기대하는 산을 등산로의 초입부터 보여주고 있었다. 산뜻하게 휘어져가는 흙길을 따라 오르는 동안 오랜만에 흙을 밟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고, 등산로 옆으로 시원히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는 귀로 듣는다기 보다는 내 머리 전체가 공명하여 온갖 잡념들을 털어내주는듯한 시원함을 주었다.

정상에 가까이 갈수록 조금씩 바람이 세지기 시작했다. 구름과 바람의 조화가 만들어 내는 주변 경관은 시시각각 변하고 매 순간 풍경이 어찌나 매력적인지 한 순간도 놓치기 싫을 정도였다. 한 동안은 백설공주라도 튀어나와야 될 법한 사랑스런 겨울 풍경이 펼쳐지는가 하면 잠시 후에는 내가 마치 2차 세계대전의 패전을 감지한 한 독일군이 되어 동료들의 무덤을 보고 있는 듯 해 음악에 문외한인 나조차 베토벤 현악 사중주가 이런 풍경에 어울릴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정상에 올랐을 때 뿌듯함이 제법 컸던 건 산도 제법 높은데다 날씨가 춥고 등산로가 미끄러웠기 때문일 거다. 아이젠 준비는 괜한 공지사항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보다 더 즐거웠던 건 정상에서의 점심식사였다. 산행공지에 써 있는 '간편 중식'이라는 말은 아마도 점심을 준비하지 못해 지레 겁먹고 산행을 포기할 수 있는 나와 같은 미혼자를 배려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트레일 믹스와 감자 한 두 개만 가지고 왔던 난 감자엔 손도 못 데고 따뜻한 쌀국수에 한국에 계신 우리 엄마가 보내주시기 전엔 먹어보기 힘들 법한 김치며 온갖 맛 나는 반찬을 맛 보았다. 또 다른 즐거움은 다른 회원님들로 부터 등산에 관한 철학이라 불러야 할 법한 말씀이며 산에 대한 지식을 전해 듣는 일이다. 등산시 체력 안배하는 법부터 등산용구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산을 해서는 등산로 입구에서 회장님으로 부터 다른 회원들의 대소사를 전해들었다. 회원분들과 인사를 한 후에 난 몇 몇 헤어지기를 못내 아쉬워하는 분들과 뒤풀이에 함께했다. 고백하자면 난 첫 산행 후 뒷풀이에 재미가 들어 두번째 산행을 결심했었다. 산악회 회원과 함께 하는 등산은 즐거운 일이지만, 술 한잔과 함께 그날의 산행을 정리하는 산행 후 뒤풀이가 나에겐 그에 버금가는 즐거움을 주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가 사이좋게 어우러져 주고 받는 얘기는 나에 대한 얘기가 아니어도 내 마음이 훈훈해 지곤 했다. 특히, 난 산악회 회원들로 부터 듣게 되는 지혜로운 말씀들이 좋다.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고있던 소로우가 잠시 사람이 그리워 우리 뒤풀이에 끼었다 느껴진다면 억지일까? 삶의 무게가 힘겹게 느껴지는 삼십대 중반, 난 애초에 이 삶을 헤져나갈 지혜를 찾고자 산에 오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보스톤 산악회원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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