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3
보스톤코리아  2013-09-02, 12:32:21 
풍월주
풍월주는 화랑도의 수장이다. 많은 역사서에서 화랑도의 수장을 국선, 화랑, 화주 또는 풍월주 등으로 불리면서 화랑이 보편적인 칭호인데 화랑세기에서는 그 무리의 수장을 풍월주라고 한다. 그리고 후에 파가 갈라지면서 우두머리가 국선과 풍월주로 나누어 졌다. 

즉 명칭은 풍월주로 사용하였지만 진지왕 때 화랑을 나라를 대표하는 국선으로 삼으면서 8대 풍월주인 문노의 ‘국선계파’와 9대 풍월주인 비보랑의 ‘풍월주계파’로 나누어졌다. 삼국사절요나 동국통감에는 이 풍월주의 개념이 조금 다르게 정의되어 있는데, 지소태후를 비롯한 여왕 그리고 귀족여인들을 위한 성性 상대자로 그 존재가 주목적이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김대문이 저술한 화랑세기에 따르면 32명의 풍월주가 나오는데, 28대 풍월주 오기공이 김대문의 부친이다. 그리고 ‘세속5계’로 유명한 원광법사가 김대문의 증조부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에서는 원광법사의 속명이 박朴씨라고 기술되어 있다. 또한 화랑세기에서는 설원랑이7대 풍월주로 되어 있는데 삼국유사(탑상편)에서는 진흥왕이 원화를 폐지하고 몇 개월 후 설원랑으로 하여금 초대 국선으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화랑세기를 주축으로 하여 재구성을 해보면 화랑은 540년 진흥왕 원년에 창설되어 681년 신문왕 때 ‘흠돌의 난’(왕의 장인인 김흠돌이 일으킨 난)으로 폐지 되었다가 이 후 다시 재정비되어 신라가 멸망할 때 까지 쇠퇴한 상태로 명맥만 유지하였다. 풍월주는 화랑의 수장으로 540년 부터 681년까지 1대 위화랑魏花郞으로 부터 32대 신공信功까지 승계되었다.    
무술武術과 수도修道 
우리 민족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드시 태고적 부터 인류는 생존를 위하여 손과 발을 사용한 방어와 공격의 수단이 필요하였다. 원시 사회의 가장이나 족장들은 자기 가족들을 타인들이나 맹수로 부터 보호를 해야만 했다. 고로 분명 그 어떠한 형태의 방어수단이 있었으며 원초적인 무기인 수족의 힘力을 사용했을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나름의 지략과 지모로 타 부족을 물리쳤을 수도 있고, 지혜로 사나운 맹수들을 격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인의 추측에는 원시인들은 육체적인 힘力에만 의존하여 살았다. 즉 강하고 굳센 힘, 그것은 곧 무력武力이었다. 이 무력이 무리를 지배하고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이며 상징이었다. 종족이 번성함과 동시에 타 부족들도 늘어나면서 개인의 무력은 집단의 무력으로 발전을 요구하였다. 

즉 부족이나 부락간의 정복행위가 늘어나면서 효율적인 방어나 공격을 위하여 더 높은 수준의 기技 와 기器 가 필요하였다. 단순한 힘의 사용에서 출발하여 반복적이고 체계적인 기技의 연마를 통하여 이 무력은 무기武技로 발전하게 되었다. 보편적 호신행위에서 병술로서의 형태를 가지기 시작되었다. 그리고 자연의 일부인 물체를 사용함에 따라 무기武器의 힘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 무기武器의 사용은 전통무술의 무사武士(사무라이侍의 지칭은 아니지만 그들과 그들의 칼도 포함될 수 있다) 들이 사용했던 검술, 창술, 궁술등으로의 발전과 병사/군사들이 사용한 병기로의 발전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무사들이 수련한 무는 고도로 발달된 신체적인 기술技術과 정신적인 수양과 극기로서 무장하였다. 

반복되는 수련은 무술武術과 무예武藝로 발전 되었으며, 참 무인이 궁극적으로 입신해야 할 그 ‘무도인의 자아완성, Self-Achievement’을 향하여 심신의 수련과 정신의 수양으로 구도求道의  길을 걸어 왔다. 처음에는 같은 형태나 자세에서 시작된 공방의 동작이 무와 병兵으로 나누어져서 발전되는 과정에서 무는 전통적으로 심신수련을 통하여 자아완성을 위한 수양의 도구로 유지하여 계승되어 오고 있지만(일부는 옛 무예서에 비하여 상이하게 다르고, 심지어 태권도는 세계인의 스포츠 제전인 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어언 30여년간 스포츠로서의 그 진가를 현대인의 입맛을 맞추고 있다), 병은 비약적인 진화를 거듭하여 그 병술은 전술화 되고 무기武器 역시 인류를 멸망시키기에 충분한 핵무기로 까지 발전하였다. 

사실 조선조 초기 태종이 ‘사병혁파私兵革罷’를 하기 전 까지는 무와 병의 동질성이 많이 있었다. 사병의 힘으로 정난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이방원은 자신의 옥좌를 보전하기 위하여 사병제도를 폐지하였다.(정도전이 성리학이념을 바탕으로 신권중심의 통치를 하면서 사병을 폐지하려 하였고 차기 왕권이 이복동생에게로 방향을 틀게되자 이방원은 자신의 입지위축과 정치적으로 소외되는 위기감에 형들과 함께 정도전일파와 이복동생들을 제거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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