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숭례문이여!
보스톤코리아  2008-02-18, 11:41:50 
무자년(戊子年) 정초를 맞아 가족의 즐거운 만남과 흥겨운 가락dl
아직 남아 있던 그날,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월 10일 밤 국보 1호인 '숭례문(崧禮門 /옛 남대문)'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겨울 잿빛 하늘 아래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조국을 떠나 타국에서의 생활이 정초에는 더욱더 고향이 그립고 부모, 형제가 그리운 때이다. 물론 미국에서의 '설(명절)'은 날짜도 잊고 지내기 쉬운 일이지만, 가족의 전화를 받으며 명절이 가까워 옴을 알 수 있었다. 그 반가움과 그리움이 가슴에서 일렁이고 있을 그 무렵, 느닷없는 '숭례문'의 화재 기사는 놀라움이고 가슴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으며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600년의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수난을 겪으면서도 견뎌왔던 ')'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수차례의 전란을 겪었지만 굳건히 견디며 지켜진 '숭례문'이 아니었던가. 오랜 우리의 역사가 살아서 움직이듯 시내의 빌딩 숲 사이에서 기품 있고 의젓하고 우아한 자태로 서 있지 않았던가. 어릴 적 시내 구경을 가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랬던 '숭례문이었다. 이렇듯 믿어지지 않는 벌어진 현실에 속이 타고 억장이 무너졌다. 불길에 타들어 무너지는 모습은 차마 볼 수 없는 심장이 멈추는 듯 답답함이었다. 타고 타다가 남은 뼈, 골격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은 쓸쓸함과 허탈함을 안겨 주었다. 작은 스크린을 통해 바라본 내 조국의 소식이 며칠을 가슴에 남아 응어리로 남았다.


               아, 숭례문이여!  

                 아, 숭례(崧禮)여!
                육백 년 긴 세월의 노래
                도성의 예(禮)를 세우고
                서쪽 하늘문 열어 놓고
                한양의 길 이어주던
                아, 숭례문이여!

                아, 숭례(崧禮)여!
                육백 년 오랜 세월 속
                하늘과 땅의 기둥 되어
                선영(先瑩)의 떼 아직 살아있고
                선열(先烈)들의 남은 핏자국이여.
                아, 숭례문이여!

                아, 숭례(崧禮)여!
                애달픈 사연 남아 우는데
                멍울 진 가슴의 한(恨) 태워서
                땅의 흙이되고
                하늘의 바람이 된 넋(魂)이여.
                아, 숭례문이여!
                 아, 숭례(崧禮)여!
                하늘의 뜻이어늘 어찌하리
                첫 아이 제단(祭壇)에 올리는 마음
                세속의 욕심을 내려 놓고
                하늘과 땅의 대속죄물이 된
                아, 숭례문이여!


아, 숭례(崧禮)여! 불러도 불러봐도 그 모습은 간데없다. 메아리조차도 들리지 않는다. 남은 것은 600년 받쳐온 기둥의 뿌리마저 삭아져 내린 잿더미에 쌓인 한(恨)에 젖은 눈물뿐이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할까. 귀한 보물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의 부끄러움뿐인 것을 누구를 탓할까, 모두가 내 탓이로다. 불길에 타들며 울부짖는 한(恨) 통곡 소리 하늘을 오르고 하얀 재 바람에 날리우던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앞서 가신 선영(先瑩)의 뜰에 엎드려 무엇을 아뢰며, 선열(先烈)들의 남은 핏자국을 어찌 닦아드릴 수 있겠는가. 이토록 부끄러운 후손들의 불효를 어찌하오리까. 무릎을 꿇고 또 꿇어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인 모습이다.
화염에 타들어 무너지고 녹아내린 숭례문(崧禮門), 보이는 건물이야 복원하는 일이 뭐 그리 어려울까. 하지만, 복원을 한다 한들 어찌 그 깊은 혼(魂)이 깃들겠으며 그 긴 600년 역사 앞에 후손들의 부끄러움이 씻어질 수 있을까. 울고 또 울고 통곡을 해도 모자랄 부끄러움인 것이 어찌 씻겨지고 벗겨질 수 있으랴. 사람 사람마다의 가슴에 남은 슬픔과 애통함을 무엇으로 씻을 수 있겠는가. 이도 지나면 긴 역사의 한 역사로 남을 일인 것을 말이다. 자랑스러운 보물이여, 아, 숭례(崧禮)여! 그대 오래도록 남아, 이 부끄러운 역사를 후손들의 가슴에 새겨 더욱 견고하고 아름다운 숭례문(崧禮門)으로 지켜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찌하랴, 또 어제는 지난 과거이고 오늘을 위해 마련된 시간이었음을 기억하자. 또한, 내일은 새로운 오늘의 준비이다. 어제의 어리석음과 부끄러움을 마음에 새겨 내일의 오늘은 더욱 희망인 날을 맞이하자. 어제의 슬픔과 애통함과 비통함으로 오늘을 잊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숭례문(崧禮門)에 남은 앙상한 골격의 숯덩이와 쌓인 잿더미의 역사는 우리가 모두 진 어제의 빚이다. 선조에게 죄스럽고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빚이다. 그 빚의 청산을 위해서는 오늘을 바로 살고 열심히 성실히 사는 일이다. 누굴 탓할 시간은 잠깐이면 족하다. 진 빚을 갚으려면 부지런히 일하고 절약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우리 선조에게, 후손들에게 진 빚을 갚으려면 우리가 오늘을 바르게 살고 옳게 사는 일이 최선은 아닐까.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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