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고무신에 담긴 비밀
보스톤코리아  2008-08-05, 00:03:27 
오르고 또 올라 높이 높이에만 서 있었다. 딛는 땅을 멀리 자꾸 밀어내고 살았다. 지난해 여름 한국 방문 중에 전남 순천에 있는 '송광사'를 찾게 되었다. 한국에 있는 선배 언니와 여행 계획을 세우는 중 송광사의 '여름수련법회'의 묵언 수행을 1주일 하기로 결정하고 등록을 미리 해두었다. 그리고 선배와 나는 송광사에서 지내는 동안 '하얀 고무신'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가지런히 옮겨 놓으며 키가 작아서 굽 높은 신을 찾았고, 예쁜 다리로 보이고 싶어서 높은 신을 찾았다. 나 자신보다는 늘 남의 이목을 더 챙겨야 했던 나, 그런 세월이 언 25년이 다 되었다.

단 한 번도 신어보지 못했던 '하얀 고무신'이 처음에 너무도 어색했고 한 이틀 정도 신고 있으려니 발뒤꿈치를 물어뜯어 놓았다. 아마도, 신발도 제 주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발바닥에 닿는 땅의 느낌을 조금씩 잃어가기 시작할 무렵 세상을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부족함을 감추는 연습을 보이는 것이 제일이라고 그렇게 자꾸 최면을 걸면서 세상에서의 아름다움은 보이는 것뿐인 것처럼 살았다. 남보다 앞서지 않으면 뒤지는 것인 줄 알고 열심히 달리고 뛰면서 제일 앞장서 가길 원했다. 때로는 힘겨움에 버거워하면서 애를 쓰며 살았다.

지난해 여름 처음으로 '하얀 고무신'을 신어 보았다. 뒷굽이 늘 높은 신(구두)을 신었던 탓에 뒤로 자꾸 넘어지는 느낌으로 불안한 반나절을 보내야 했다. 어색한 신발에 뒤뚱거리는 내 몸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익숙해지며 신발바닥과 땅과 아주 가까이에서 닿는 느낌에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자갈길을 걸을 때면 더욱이 돌멩이 모서리가 발바닥을 찌르며 아찔아찔한 느낌에 새로운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이틀째를 맞으니 신발과 제 발이 하나가 되어 편안한 느낌으로 만나고 있음을 알았다.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아래의 것들은 잊기 쉽다는 것을, 잃고도 잃어버린 것조차 잊어버린 감각에 땅에서 움직이는 작은 짐승들은 안중에 없었다.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고 앞만 보고 걷고 달리고 있었다. 너무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무뎌진 내 영혼의 감각을 깨달았을 때 소스라치듯 놀라고 말았다. 너무도 쉬이 내뱉었던 말들이 어찌 이리도 부끄러운지 말이다. "아, 그랬었구나!" 내 기쁨에 다른 이들의 가려진 슬픔의 그림자들은 잊고 말았던 것이다. 느끼지 못하고 지나쳤을 다른 이들의 아픔을 생각하니 새삼 나에 대한 무책임에 부끄러움이 앞선다.
'하얀 고무신'에서 나는 땅의 심장 소리를 느낄 수 있었고, 자갈들의 움직임에 깔깔거리는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땅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놀라움이고 신비이고 경이를 만났다. 나와 땅이 만나 한 호흡으로 숨결을 내고 나누는 또 다른 언어는 서로 전해주는 자연과 사람이 하나로 만나는 축복과 감사의 얘기이다. 오래도록 닫아놓은 나의 가슴만 열면 너도 만나고 또 다른 내 속의 나를 만날 수 있음을 또 깨닫는 날이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 속의 깊은 나를 또 만나기 시작했다. 잃어버렸던 내 속의 깊은 비밀들을 하나씩 찾기 시작했다. 들려주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귀가 열리고, 보여주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열리는 듯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를 감싸며 보호하는 천사들의 노래들이 귀에 들리고 하늘을 나는 듯 황홀함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나에게로 돌아가는 길, '참 나를 찾아가는 길'임을 깨닫는 귀한 시간이었다. 여름 비에 젖어 흙냄새가 진동할 때에 더욱 견딜 수 없는 나를 만난다. 나를 빚어 만드신 창조주의 손길에 호흡하는 나를….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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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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